어느 시조(時調) 백일장 예선에 작품을 냈다. 얼마 후 전화가 왔다. 여러 곳에 입상한 경력이 있으면 등단(登壇)으로 간주 되어 일반인 백일장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공식적으로 등단이란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여러 백일장서 그런 자격을 준다는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사회적 분야에 처음으로 등장함. 주로 문단(文壇)이나 화단(畵壇) 따위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을 이른다.' 로 풀이하고 있었다. 첫 백일장에서 등단의 명칭을 받을 만큼 성적을 낸 건 고사하고 걸맞는 작품을 낸 적이 없었다. 몇 번의 입상이 등단의 칭호를 줄 만큼 문학적 무게가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도 초야의 풀잎일 정도다. '등단' 이라는 허울을 씌워 백일장 참가를 제한한다고 해 어이없는 서운함을 견뎠다.
한가위
질경이 난 두렁길 외등 곤히 깊은 골짝
쥐눈이콩 고랑을 김매던 날 그때처럼
안 오고 무얼 하겠어 기다림을 켜는 밤
눈부신 전조등 한 쌍 윗마을로 넘어가고
쫓아가던 어둠이 되돌아 앉아 눈감으면
사랑채 문 앞 전등도 가물가물 무거운 눈빛
길이 막혀 늦을 테지 혼자 이 밤새려고
끊어지는 마음 넝쿨 이어 감는 어머니
처마에 꺼지지 않는 둥근 달을 걸어 둔다
이 예선 작품이 백일장 참가 제한을 가져다 준 계기였다. 참가의 즐거운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일시에 찌개 거품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