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2022/05 6

모기와 첫 만남

그의 첫 수렵지가 내 머리맡일 줄 몰랐네 사냥감으로 살집의 얼굴과 씨오투가 나오는 입 뿐인데 귓가에 와서 사냥 시작의 경보를 울리네 나는 사냥 구역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어둠을 클릭 전등을 밝히고 성벽 없이 대치에 들어가네 보일듯 말듯 유령 같은 모기 여전사 내 피로 키워야 할 그의 가족은 몇이나 될까 침대 위로 날아와 꽃 이불을 건너서 침투하네 나의 무기는 붉은 플라스틱 파리채 꼬나들고 전등 조명 아래의 공간을 서핑하네 오프라인 동영상으로만 검색 되는 그녀의 전투복 자락 침대의 수면 영역을 직선으로 활강하며 씨오투 풍기는 내 입 근처로 쳐들어 올 때 나는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든 무기를 잊고 무기를 들지 않은 손으로 포획을 노리네 아무래도 그녀는 신병인 것 같네 공격 서툰 내 손이귀에 잡힌 그녀는 손가락 사..

글(文) 2022.05.20

삶의 하루 콘텐츠

해가 구름 뒤주에서 오늘 일조량을 얼만큼 퍼낼지 이마에 부딪는 빛알갱이로 우선 가늠하지 정수리에 쌓이는 양에 따라 한식경 흡수하는 갈증 손등 높이로 수분을 맞추면 발품 길이 따라 접근하는 비등점 구두 밑창을 뜨겁게 달구고 허기를 적어 놓은 넷북 지하철 통로에서 수저가 마구 달겨드는 광장에서 나는 빛 입자에 버무린 잇속을 기다린다 철근처럼 콘크리트 속에서 장력을 움켜 쥔 '마땅히'란 제목 직광을 돌려보내며 안으로 전등을 켜는 '캄캄하지 않아' 란 주제 갈망의 수은주를 빙점 가까이 낮춘다 아메리카노 한 모금에 도는 방심 칸칸이 긴장을 입맞춘다 빠뜨린 전화 번호와 확인 늦은 분발 정오를 넘어 충분히 뜸들인 오후를 임시저장한다 비스듬한 햇살에 노출된 긍지의 척추 5번 디스크 '자세가 비뚤었습니다' 란 진단을 내..

글(文) 2022.05.16

우크라이나

내 詩는 탄환 한 발 막지 못하네 포연 속으로 한 발짝도 못 들어가네 모니터 영상을 보면서 젖은 낱말을 찾은 다음 건조한 무선 화면에 펼쳐 놓고 마를 때를 기다리네 한 낱자 뉴스를 가장한 바람에 날아가 영상 귀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받침만 다시 쓰네 그러면 겨우 한 줄 두운 없이 화면을 채우고 모음 잃고 흩어지는 자음을 자꾸 모으네 상흔에 밴드 한 쪽 붙이지 못하네 피빛에 물든 낱말이 각막을 뚫고 유리체를 건너 망막에 부딪치면 내 나라 전란 중에 태어나 살아 남은 아버지 파월 장병 수송선 아래 태극기 흔들던 어머니 그들이 만나 나를 시 몇 줄로 지었을 때 참전 용사의 문패를 가진 할아버지가 흑백으로 비치네 내 시는 기억을 잘 서술하네 두음법칙 구개음화 가리지 않고 명조체로 간직하네 돈바스 비극에 소리없이 ..

글(文) 2022.05.11

송화 필 때쯤

그 때는 소나무도 훨씬 푸르러 짙은 녹음을 양팔 드리우지요 내 뺨에 내려앉은 송화 가루가 햇살로 다져저 마음 안으로 꾹꾹 누르면 당신을 생각했다는 증표의 노란 다식들이 어머니 기일 상 위에서 층층나무 꽃 피던 송화가루 다식 하나 입에 물면 어머니 젖무덤 같이 말캉하게 당신이 두 번째 엄마가 되는 오월 새들은 이미 노래로 부르고 있었지요 유선에 노래를 싣다가 잠이든 어머니처럼 층층이 살아온 삶의 가락을 흥얼거리다가 깜빡 백일몽에 이승을 나갔다가 칭얼대는 내 숨소리에 날개를 접은 당신의 오후 소나무 아래 솔거의 배짱으로 사랑을 그립니다 파릇하게 질려 버린 목소리로 애기똥풀꽃 옹알거리는 물가에서 눈을 닦으면 아직은 다 피지 않은 송화 다식판에 서명 날인하듯 꿀에 이긴 노란 하트 다량으로 찍어냅니다.

글(文) 2022.05.07

다리가 있는 냇가

김천에서 거창 쪽으로 59지방도로 금남로를 따라 가다 보면 구성면이 나온다. 감천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도로와 엇비슷 흐르는 면내의 냇가엔 한여름 나무 숲이 짙은 녹색 그늘을 드리운다. 이른바 "구성냇가'의 풍경이다. 여름내내 피서객으로 물놀이 즐기는 아이들 목소리가 새소리처럼 어우러지는 곳. 매미 소리도 숲과 함께 우거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