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2022/10 7

가을 과자

찰옥수수 튀긴 강냉이, 감자 튀김 스낵, 계란으로 구운 전병...어느 저녁 지인으로부터 받은 과자 봉지는 가을이 듬뿍 담겨 있었다. 가을에는 모든 것들이 여물고 익어가듯이 내게 한 가을 저녁이 과자처럼 노릇하게 익어갔다. 그리고 고소한 과자의 맛처럼 여물었다. 단숨에 감자(나는 감자바위-강원도 별명-출신이다) 튀김을 와작와작 비웠다. 감자를 한 끼니로 먹으며 자란 내력이 고스란히 반영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옥수수로 튀긴 강냉이를 집사람과 마주앉아 한 알 한 알 고향얘기, 친구들 얘기 오순도순 알갱이를 굴렸다. 옥수를 감자와 함께 한 끼니로 먹으며 자란 어린 시절 늦여름 추억과 수많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이야기가 식탁 위를 굴러다녔다. 봉지가 열리면서 이야기를 쏟아내는 과자였다. 평범한 서민의 한살림을..

글(文) 2022.10.25

가을 하늘

어제는 동쪽 파랑 초원으로 구름양떼 몰고 가더니 밤 사이 모두 양털을 깎았나 보다 선득한 오늘 아침 양털 카펫을 깔았다 초록 초원이 먼 땅에 사는 나는 별 수 없이 먼지 없는 물세탁 가능 도톰한 사계절 거실 사각 러그 카펫을 깔았는데 털실 빠진 직물 여백처럼 파랑 풀이 듬성듬성 드러난 하늘 양털 카펫 뵈지 않는 목자가 앉았다 간 귀퉁이가 눌려져 있다 가벼울 것 같은 그의 몸 무게가 중력을 얻었을까 낙엽 무늬 컬러풀한 땅 위로 지나간 자국 보일 만큼 환한 아침나절 나는 중력을 거부하고 창밖으로 나가서 코까지 파묻힐 만큼 폭신한 양털 카펫 위에 눕는다 주인 목자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공간은 파랗고 태양에 눈이 탈 듯이 시리다 이 대형 양털 카펫 어느 구석에 땅에서부터 먼저 올라와 늦잠에 빠져 있을 어머..

글(文) 2022.10.17

그대와 나의 그림

그대에게 있는 나의 것 내 안에 넣어 주세요 위치는 그대에게 있지만 쓰임새는 내게 넣어졌을 때 꽃사과 익어가요 쑥부쟁이 쑥스러운 길가에 참새가 멧새 곁으로 날고 비단벌레 건너갈 때 길냥이는 풀숲으로 들어가요 그대에게 있는 단 하나 나의 것 내 안에 있는 한 곳에 놓아 주세요 위치만 가졌을 땐 뿌리일 뿐이지만 쓰이기 시작할 때 단풍이 짙어가요 다육이 도톰하게 피어 오르고 나는 스케치북에 그려 넣어요 정물 같이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파노라마 풍경을 그리며 우리는 그림처럼 쓰여졌어요 지우지 않고 계속 그리는 그림으로 그대에게 있는 나의 정물 내 안의 화폭에 넣어 주세요 비로소 색을 칠할 때 물관의 수문을 열었어요.

글(文) 2022.10.14

비 온 뒤 찬바람

가을은 망설인다. 이대로 추워져야 할지, 조금 더 더위를 유지해야 할지. 하늘 파랗게 코밭트 색으로 물들여 놓고, 몇 점 흰구름도 얹어 놓고, 활엽수 꼭대기를 울긋불긋 물들이다가 서늘한 바람에 잠시 쉬곤 한다. 바람이 물든 나뭇잎을 불어 날리면서, "곧장 가는 거야, 황소의 뿔처럼 고개 숙이지 말고!" 성화를 해도 가을은 집집마다 창가에서 서성인다. 아직은 변한 적이 없는 햇살을 끌어다가 창가에 걸어 주며 어디서 겨울이 호시탐탐 남하를 꿈꾸는지 귀띔하기를 미루고 미룬다. 그러면 밤새 몸 굳어 있던 잠자리, 나비.....떠날 시간이 임박한 날짜를 견디며 몸 풀고 나온다. 가을이 미적거리는 온기 속을 날으며, 계절을 따라 떠나고 남는 이치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가을은 더욱 마음이 붉어진다. 영영 떠나는 생명..

글(文) 2022.10.10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화

하이든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C 장조 (Hob. VIIa/1)...바이올린을 넣은 정물화를 그릴 때, 이 음악을 켰다.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냥 바이올린을 그릴 보다 바이올린과 관현악의 하모니를 즐기며 그리는 그림 작업은 아주 괜찮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하이든을 잘 모르고, 협주곡의 내용을 모를지라도 흐르는 선율만으로도 좋은 기분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림과 음악은 퓨전 음식처럼 맛깔스럽게 어울리는 관계임에 틀림없었다. 음악이 있어서 그림 작업이 즐겁고, 그림이 있어서 음악이 한층 깊어진다. 협주곡의 도입부 악보를 그림 배경에 그려 넣었다. 악보와 선율의 잘 어우러짐을 그림 속에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지만, 다음 작품에 선율의 흐름까지 잡아 볼까 생각했다.

수채 정물화 2022.10.06

책한권은집한채와같다

시야가 좁다래져 가고 청각이 멀어져 간다 나는 어느 시간에 와서 어느 계절로 가고 있을까 길섶 웬 모퉁이에서 어떤 꽃을 보았으며 먼 바다의 첫 파도에서 소라고둥 소리 들었을까 아침과 저녁의 별을 적기 시작한다 정오에 하늘 가운데를 건너가는 달을 수록한다 개들이 산책할 때 개밥바라기를 놓치지 않는다 길냥이들도 페이지를 빠져나가지 않는다 봄이 마침표를 지날 때는 글자가 파릇했고 뙤약볕 냇가를 건널 때는 낱말이 시퍼렇게 여울졌으며 마스크 쓴 격리에도 불구하고 구절들은 여물어갔다 눈은 가끔 폭우처럼 페이지를 넘쳐 어느 해는 북해를 넘어서 극지까지 근심의 문장을 멈추지 않았다 세간살이마냥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거실만한 희망과 다용도실 같은 꿈이 발코니 보다 아찔하고 늘 켜져 있는 데스크 탑 무소음처럼 조용하..

글(文) 2022.10.03

파스텔畵 한 폭

고향 집 뒤란에 장독들이 다소곳이 모여 앉은 장독대. 할머니로부터 어머니를 거쳐 맏형수로 이어지는 장독대 가는 길에는 그녀들의 발자국이 지문처럼 묻어 있다. 나는 그 장독 안의 되장과 고추장 그리고 간장을 먹으며 자랐다. 오형제들과 숨바꼭질 할 때 숨는 장소가 되었고, 울 밑에 닭의장풀, 애기똥풀꽃 필 때, 혼자서 찾아낸 사금파리로 토종닭처럼 울밑의 흙을 파곤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 정착하고부터 장독대는 고향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콘화(icon畵) 그리듯 장독대를 유화(oil painting)로 파스텔畵(pastel painting) 로 그렸다. 주방 벽에 걸어 놓고, 유년 시절의 장맛이 주방 음식에 스미어 들기라도 하듯 식사를 할 때는 간을 더하듯 바라보곤 한다. 고향의 맛이 묻어난다. 오래 전에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