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2019년 폴더에 저장해 두었던 설을 불러온다 낡은 곳 한 군데 없다 고스란히 떡국이 들어 있고 신사임당 치마자락 같은 세뱃값이 들어 있다 둘째 할아버지의 기침이 묻어 있는 임금님의 용안이 접힌 지폐도 있다 (딱지를 접었다가 혼난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휴지통에 버렸던 윷놀이 말판.. 글(文) 2020.01.24
나는 누가 작성한 응용프로그램일까 컴퓨터가 있는 책상의 위치를 잊지 않고 스스로 다가가 전원 버튼을 누른다 어제 저장한 문서의 파일 명을 기억하고 다시 불러와 작성한 어제의 누락된 실망과 부족한 희망을 보충한다 긍정과 부정을 구분하고 휴지통에 버릴 이해와 영구삭제할 모름에 관하여 엔터 키를 탕 치는 즐거움.. 글(文) 2020.01.18
새해 세쨋 날 새해가 사흘까지 왔다 첫 날을 지날 때 새로워진 길이를 재지 못했다 어련히 새로워질 것 같았다 둘쨋날은 오히려 한 뼘 줄어든 새로움 그 속에 작년이 숨어 있었다 미처 몰랐다 파일처럼 저장 되어 있었다 부르면 톡 튀어나올 이모티콘 같은 작년 새해는 새로움이 자동화 되어버린 캐릭.. 글(文) 2020.01.03
세모 밑 달력 31 & 30 & 29 & 28 & 27 & 26 거꾸로 읽는다 아직 26일 엿새 간의 '아직'이 '여유'의 손을 잡는다 서로 손이 따뜻하다 얼음이 얼지 않는 남부지방의 아직과 여유다 두 성질이 남쪽에 가까운 삶의 달력을 읽는다 26 * 27 * 28 * 29 * 30* 31 엿새 간의 '이미'가 '벌써'와 등을 돌린다 '이미'의 등짝은 산비탈처.. 글(文) 2019.12.26
나의 크리스마스 커피를 내린다 드리퍼가 없다 손잡이 달린 컵에다 거름 종이를 얹고 오목하게 손질한 후 커피 분말을 세네 스푼 퍼 넣는다 거름종이 둘레를 왼손으로 감아 쥐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찬 것은 아이스크림조차 한 입 먹지 못한다 크리스마스는 찬 계절에 있다 마음 안방에서 종을 울리지 않.. 글(文) 2019.12.25
가을 고양이 4 나는 방관자였다. 일층 식당 아저씨와 2층 발코니 학습지 선생과 큰 목소리로 한 마리 남은 아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 며칠 전 오후, 2층 발코니의 여러 가재도구와 과일 상자 곁에 웅크리고 있던.....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무슨 소리가 나면 귀를 쫑긋거리거나 고개를 잠깐 .. 글(文) 2019.11.07
가을 고양이 3 1층 지붕 밑에 사는 식당 주인은 아기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와 식당 입구 쪽 지붕 모서리에 싸질러 놓은 고양이 똥 냄새에 대한 고충을 털어 놓았다. 집을 만들어 주고, 먹이를 주는 이웃 사람들은 그 고충을 모르고 아기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을 즐긴 것이다. 아기 고양이들이 사람.. 글(文) 2019.11.03
가을 고양이 2 골판지 사과 상자로 만들어 준 집에서 아기 고양이 세 마리는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꼼짝도 않고 들어 앉아 있었다. 햇살 드는 지붕 가운데서 장난치며 놀다가 쏙 들어가곤 했다.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고양이의 배변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고양이들이 뛰.. 글(文) 2019.10.29
가을 고양이 1 뒷집 2층 발코니에 둥지를 틀었던 길고양이 어미 고양이와 여섯 마리 아기 고양이가 2층 셋집 주인한테 쫓겨나 1층 판넬 지붕 위로 떨어져 발코니 아래에서 노숙하던 초가을 무렵 1층 사람들과 옆집 사람들이 고양이를 귀여워했다. 종종 올려다 보며 사료를 주거나 음식을 일회용 접시에 .. 글(文) 2019.10.27
메뚜기와 의 조우 강변 산책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메뚜기 한 마리. 잽싸게 도망갈 텐데 미동도 않는다 살짝 건드리자 폴짝 내 신 발 위로 올라 앉는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2019년 한 생을 마감하는 시간 앞에서 생짜 모르는 만남 앞에서 다가와 앉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곧 추위가 닥치면 어떤 모.. 글(文) 2019.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