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조담우 빈들에 겨울잠이 구불구불 누워있다 바람이 차갑게 논두렁을 넘는다 들쥐가 나왔던 논두렁으로 되돌아 가 숨는다 바람 타는 잿빛 풀들이 고개를 들 때 마다 줄기 아래 남아 있는 푸르렀던 기억들도 보이다 말다 얼핏 얼핏 바람 속에 숨는다 서릿발 녹은 응달 쪽에는 메 꽃 뿌리가 하얗다 그냥 씹어 봐도 달콤한 어릴 쩍 봄 맛 퇴비 실어 나르는 트랙터 소리가 구불 구불 누워 있는 겨울 잠을 끌고 간다 좀 오래 전 일이지만 짐 싣는 자리에 두꺼운 까만 고무줄을 축 늘어뜨리고 삐걱삐걱 소리 나는 자전거에 우편이라고 쓰여있는 캥거루 배를 닮은 커다란 빨간색 가방을 자랑스럽게 메고 있던 우체부 아저씨가 생각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면서도 멀리 사는 딸에게서 편지가 올 것만 같은 찌릿한 예감 살짝 덮고 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