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331

지지 않고 열매를 맺는 꽃은 없다

가로수 벚나무 가지의 꽃이 모두 땅으로 내려가 버린 뒤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나뭇가지 마다 초록 이파리가 피고 있다 움추린 날이 더 많은 겨울과 옹송그린 시간이 더 긴 코로나 속의 거리에도 견디고 이겨낸 뒤의 갓길에 연두빛 싹이 돋고 있다 검진과 확진의 꽃샘바람 속에서 화사한 미소를 퍼뜨려 온 산수유 개나리 목련의 꽃잎도 땅으로 돌아간 뒤 품고 있던 초록 잎을 생기 넘치게 펴고 있다 지지 않고 초록 잎을 내는 봄꽃이 어디 있으랴 (꽃잎 떨구지 않고 씨방을 익혀가는 꽃이 어디 있으랴) 아버지가 땅 아래로 돌아간 뒤 손녀가 땅 위로 나왔다 어머니가 분말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간 뒤 손자가 땅 위로 내려왔고 내가 사회 계약에 해약의 싸인을 한 뒤 새 계약이 이루어졌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이 전국에 핀 후 코로나가..

글(文) 2020.04.11

격리 된 봄

격리 된 봄 나뭇가지와 헤어져 땅으로 내려간 흰 꽃잎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목련나무가 미열 때문인지 수척하다 신경도 안 쓰는 참새들이 재재거라며 이리 날고 저리 날고 막 새잎 돋는 회화나무 가지는 작년에 치장했던 생기의 삼십 프로 칠십 프로 하위까지 예상을 넓히고 있다 녹색을 가득 채운 회양목 곁에서 풍성했던 노란 미소를 접고 있는 개나리와 매실의 기억이 시큼했던 매화나무, 시큼 달달했던 산수유나무가 코로나 음성 판정 이후 얼굴에 덮여 있던 수심을 걷어내고 있다 세 번이나 개학이 미뤄진 학교 담장 울타리에는 붉은 장미 새 순이 한 뼘 고개 들고 겨우내 동심을 지켜온 소나무가 증상을 이겨낸 어두운 녹색 바래지 않았다 언제 운행을 시작할지 꿈을 꾸는지 아침 햇살에 이마가 빛나는 어린이 보호차량 소방도로 가..

글(文) 2020.04.09

언제쯤...

이 빈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일까. 공원 나무엔 새순이 돋고 목련 개나리 벚꽃은 피는데 사람들 얼굴은 피지 않는다. 차들은 엎드려 있고 사람들은 사회적 격리 자가 격리 애써 실천 중 봄은 웃옷 벗고 왔다가 지난 겨울 패딩 입고 왔다가 쭈뼛거린다 벌써 갓털 날리는 민들레 새 잎 팔 벌리는 씀바귀 공원 길 구석구석 어김없이 달세 입주 했는데 코로나 거리에 전세 구할 사람과 휴점 월세 걱정하는 사람과 하루벌이 사는 사람들 봄은 살랑살랑 바람을 데려오다가 쌀쌀한 바람을 뿌리치다가 새싹에 물주는 비도 데려오는데 코로나도 멀리 데려다가 묶어 놓고 왔음 좋겠다 봄에게 그런 능력 챙겨줄 이가 아쉽다.

글(文) 2020.03.26

닫힌 門 열린 門

봄은 예년 보다 일찍 문을 열었다. 산수유 개나리 목련 진달래 모두 문간에 내 놓았다 길섶에는 큰개불알꽃 (봄까치꽃) 명자꽃도 진열했다 아직 나비가 찾지 않는데도 어김없이 문을 열어 놓았다 우리 집은 문을 꽁꽁 닫았다 현관에는 손세정제와 분무기 소독약을 진열해 놓았다 닫혀 잇는 창문을 가끔 열어 놓는다 미세먼지 때문에 금세 닫는다. 택배가 오면 물건만 문 앞에 있고 택배 기사는 온데간데 없다 비대면 거래가 상식이다 물건을 소독약으로 소독하고 안에 들인다 가까운 사람도 전화로 문안한다 부득이 만날 때는 손을 잡지 않고 마스크로 입을 걸어 잠근다 마음은 열어 놓지만 입을 열어 놓지 못한다 이게 뭔 시튜에이션이야! 열아홉 살 코로나가 사람들을 문 안에 가둬 놓았다 동네를 가두고 도시를 가두고 나라를 가두고 세..

글(文) 2020.03.21

쑥향

성큼성큼 봄은 오고 있지만 바람은 아직 차갑고 거리엔 열아홉 살 코로나가 어느 사람을 숙주로 삼을까 적막한 눈초리가 서늘하다 그 팔팔한 침묵을 뜷고 도시 변두리 산 아래로 가서 쑥을 캐온 애들 엄마 코로나가 연일 이름 올린 일간 신문지를 펴 놓고 다듬는다 코로나 보다 더 젊고 파릇파릇한 쑥이 막 씻고 나온 애들의 얼굴 같이 어떤 바이러스도 단번에 밀어내는 싱그런 미소를 던진다 코로나의 으름장에 몇 주째 방에 처박혀 날씨처럼 흐린 마음에 삶의 향기를 풍긴다.

글(文) 2020.03.15

봄비

코로나 거리에 비가 내린다 자가 격리 사회적 격리 코호트 격리 구별 없이 비가 내린다 마스크 사러 가는 자와 면마스크도 안 쓴 자 구분 없이 봄비가 내린다 활짝 핀 산수유꽃 나무 새순 돋는 회화나무 가지 꽃사과 나무에도 비는 같은 양으로 안단테 같은 빠르기로 '미' 아니면 '솔' 음정일까 어쩌면 낮은 '도' 음계로 조용히 내린다 길섶에 관심없이 큰괘불알꽃 작년의 핑크뮬리 그루터기에도 비는 내리고 마스크 쓴 사람들 우산 위에도 봄은 내리고 젖는데 젖어드는데 언제쯤 코로나, 너는 비 맞으며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느냐 심술을 거두고 가느냐 비 아래 초목은 저리 싱그러운 잠을 깨는데. -초4학년 여자아이 그림-

글(文) 2020.03.10

주말 코로나의 산책 길

바이러스 감염을 피하려고 방콕한지 며칠. 섬유질 근육이 풀린 몸 여기저기 힘의 보충을 부른다. 더 꼼짝말 것인가. 몸을 다랠 것인가. 패딩을 입고 KF94 마스크를 쓴다. 밖은 경칩을 앞둔 이른 봄의 햇살이 미세먼지 보통을 머금고, 금세라도 땅 위에서 아지랑이를 끓일 것 같다. 기온은 부드럽고 바람은 나지막하게 차갑다. 산수유가 엷은 노란 색의 미소를 소복이 나뭇가지 끝에 올려놓고 있다. 길섶 여기저기 자고 4판화의 개불알꽃이 짙은 초록 바탕에 흰 화심의 판란 꽃잎으로 점묘화를 그렸다. 한라산에서 흘러왔을까? 한라송이가 머메이드 라인 드레스 같은 자줏빛 꽃을 내걸고 있다. 강바닥 한 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가에는 청둥오리, 물오리, 원앙의 무리들이 모래밭에 앉아 광합성을 하고 있고, 날개를 퍼덕이며 몸을..

글(文)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