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수채 풍경화 72

조용한 연못가

아직 연꽃은 피지 않았고, 작년에 꽃진 줄기와 잎이 갈색, 적갈색으로 촘촘히 우거져 있다. 봄볕은 따스하고 미풍은 선선하며 정자는 호젓해 보인다. 새는 지붕 위로 지나가고, 흰 나비 처마 밑을 맴돈다. 쉬어가는 고요가 잠잠하다. 공원 관리 아저씨가 소리 없이 둘러보고 햇살이 밝은 눈빛으로 사방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다.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고, 새 순 돋는 느티나무의 화사한 잎새, 묵은 까치 집을 이고 선 메타쉐콰이어 나무도 봄 맞을 준비를 마쳤다. 황토색 빛 갈대 숲이 봄이 오건 말건 눈부신 머리채를 뽐내고 있다. 이 숙연하고 조금 부끄러운 듯 내성적인 풍경을 어이 그냥 지나치랴. 폰으로 찍었다가 스케치북 화면으로 옮겨 담는다. 경북 김천 모광연화지.

수채 풍경화 2023.04.08

산을 채색한 눈

눈이 산을 색칠하면 산은 시루떡 맛을 품는다. 검은 콩과 건포도 박힌 떡 모습을 한다.떡 맛을 아는 사람들이 산에 오르면 산은 기꺼이 귀퉁이를 내 준다. 사람들은 숨을 헐떡이며 게걸스레 먹는다. 찬찬히 먹기에는 떡산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떡 위로 넘어지고 구르기도 한다. 떡고물이 입안에 들어가면 혓바닥이 시리다. 겨울이 익은 떡이다. 산 너머 사람들과 산 아래 사람들이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떡. 훈훈해진 온정이 떡을 다 나눠 먹으면, 산은 생크림 속의 빵처럼 봉긋해진다. 빵맛을 아는 사람들이 또 먹는다. 올라가서 먹는다. 줄어들지 않는 빵. 오래도록 먹음직한 빵이다.

수채 풍경화 2023.02.09

가는 가을 기억하는 풍경화

산은 계절이 오는 길목이다. 가을도 거기로 와서 긴 시간 짧은 기억으로 머문다. 기억 속에 저장한 이미지는 쉬 지워지곤 한다. 스케치북에 그려 두는 까닭 중에 한 가지다. 스케치북에 저장한 가을은 변색 되지 않고 지워지지도 않아 선명한 기억을 돕는다. 피부에 사랑을 타투하듯 가을 풍경을 스케치북에 문신으로 새긴다. 도화지 한 장의 마음에 가을 한 폭이 온잠에 든다. 쌔근쌔근 아이의 잠결로 코골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 불러오면 언제나 제 안색으로 잠을 깨는 도화지 안의 가을...그림을 그리는 또 한 가지 까닭이기도 하다.

수채 풍경화 2022.11.26

눈 덮은 겨울잠

보리밭 청보리는 눈이불을 덮고 잔다 찬바람을 막아주는 눈이불 아래서 보리의 꿈을 꾼다 눈이불 덮지 않은 보리 싹이 추워보일 떄 벝두렁에 다가서면 푸른 내 꿈이 으스스하던 어느 이른 봄 폭설에 뒤덮힌 산비탈은 꿈이불 덮은 꿈이 깊었다 푹푹 빠지는 발자국을 내며 오르면 내가 산이고 산이 나이던 때 어둑한 숲속이 깊은 꿈속 같았다 마치 영혼을 부르는듯한 산새 소리는 눈이불 아래 꿈같이 들리고 이따금 귀밑을 지나가는 찬바람은 영원의 손길처럼 시렸다 보리밭의 꿈과 산속의 꿈이 눈 아래서 소곤거릴 때 그대로 눈에 묻혀 영원으로 가고 싶었던 그 어느 이른 봄 잔설이 헤진 꿈결처럼 아른아른하던 눈 덮은 겨울잠 한 자락의 풍경이었다.

수채 풍경화 2022.02.14

직지사의 가을

김천 직지사에 가면 나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가을이 있다 가을바람이 국도를 넘어오는 추풍령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경부선 굴다리를 지나 황악산 아래 삼층 석탑을 도는 가을이 있다 대웅전 뜨락에 서면 견성한 나무들이 울긋불긋 읽는 경문 소리 나직이 사람을 조용하게 만드는 가을이 있다 정화된 마음을 안고 돌아나가는 사람들을 구태여 붙잡지 않는 가을이 있다.

수채 풍경화 2021.10.28

지난 가을

코로나19 와중에도 색깔 화려했던 지난 가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가 그리는 날 밖은 추웠고 가을은 모든 사물에서 사라졌다. 길가 구석에 남은 낙엽이 기억의 USB처럼 지면에 꽂혀 있었다. 그 걸 뽑아서 다시 머릿속 기억의 단자에 꽂는다. 가을 느낌의 파일을 사진의 이미지와 합성한다. 가을은 스케치북 모니터에 선명하게 재현 되고 있었다. 집앞의 지난 가을

수채 풍경화 2021.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