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수채 풍경화 73

만추

가을은 가버렸지만 잊을 수 없는 가을 하나 있다 색깔 고운 나뭇잎을 다 읽지 못한 가을 하나 있다 편지 쓰기를 마친 겨울 나무 앞에서 그토록 많은 편지를 쓰고 있던 (그림 속에서 그 편지를 읽는다) 잊을 수 없는 가을 하나 있다. 가을은 못 다한 말이 있을 것이다 내가 미처 못읽은 편지 수두룩 할 것이다 가을은 그림 속에서 못 다 전송한 편지를 펴 놓는다 나는 잊을 수 없는 가을 하나 찬찬히 읽는다 붉은 가을이 내 속에 물든다.

수채 풍경화 2015.12.02

자작나무 봄길

그래,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말자 오는 봄도 맨발로 나서 맞으면 천천히 오다가도 서들러 오겠지 자작나무도 새순 밀어 맞고 있는데 바람도 나뭇가지 빌어 손 흔드는데 나도 가슴 내밀어 봄을 끌어안을 준비를 하자 두꺼운 옷 벗어 버리고 봄이 다가와서 스킨쉽하도록 드러난 팔목과 종아리를 내놓자 봄은 좋은 곳 싫은 곳 가리지 않고 오는데 햇살 환한 쪽으로 우선 가보자.

수채 풍경화 2015.03.21

다시 가고 싶은 섬

그 섬에 가면 바닷가에 먼저 선다 정다운 밭담이 청보리 밭을 안고 귓속말로 전하는 바다 얘기 들을 때 고개 든 유채꽃은 귀를 기울이고 내 키에 맞춰 나지막이 앉아있던 수평선이 산을 오르면 기슭까지 따라 키를 높이는 그 섬에 가면 산이 바다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바다가 산을 어떻게 그리워하는지 통 모르는 사람조차 알게 한다 그립다는 게 어떤 표정인지 그 섬에 갔다온 사람은 사진만 보아도 그 사진을 보고 그림으로 그린 사람조차.

수채 풍경화 201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