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무중 十里霧中
8킬로미터 폭으로 안개가 끼어 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입춘 소식이 한참 지났다. 오던 봄이 어디로 갔는지 뿌연 길섶에 바람만 차다. 나라 안의 곧은 길에 날씨가 안개를 치는지. 수 많은 입들에서 나오는 입김이 안개를 펴는 건지. 추측과 신념에서 뿜어 나오는 주장들이 일으키는 안개일지도 모른다. 판단과 주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조작으로 부풀어 오르는지도 모른다. 단핵 정국에 매일 뜨는 태양조차 안개에 가려져 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아니라 십리무중(十里霧中)이다. 미디어 화면과 화면이 연일 시비를 가리고, 앞길과 옆길이 대립해 부르짖고, 판단이 지혜를 건너 의혹에 빠지는가 하면, 논객이 논리를 뛰어넘어 교만에 빠진다. 혜안(慧眼)을 갈구하던 순수들이 편을 갈라서서 푸른 길섶으로 아전인수의 세류를 쫓는다.
뜻밖의 엄중한 경계가 밤중에 느닷없이 내려진 후 보름달이 네 번이나 둥글었지만, 나라 안 집집마다 창으로 들어와 다가올 아침을 서술했지만,태양이 아침을 공표한 이후에도 창백한 낮달로 흐리고 차가운 허공을 질러갔다. 하늘은 오불관언, 땅은 수수방관, 사람들은 왈가왈부, 버들개지 도래 소식은 십리무중이다.
상식과 견문이 일천한 민초는 어디에 뿌리를 뻗어야 하나. 그 중에 한 포기인 나는 어느 신념과 주장에 귓바퀴를 굴려야 하나. 귀지를 파내고 귓불을 아무리 씻어도 맑고 고운 소식 귀 안으로 담기지 않는다. 참말과 거짓말이 뒤섞여 웅웅거리는 잡음만 달팽이관을 두드린다. 평형기관의 옳은 감각들이 떨어져 내려 분별이 어지럽다. I can't figure it out !
너와 나, 우리와 그들, 이 자식과 그 자식 모두 이 쪽과 저 쪽의 적대적(敵對的) 관심(觀心)에 허우적대며 책임 못질 도가니탕을 끓이고 있다. 맛대가리 일도 없는 주장을 처 먹으라고 외친다. 너무 뜨거워 걱정과 근심으로 다문 입술이 데인다. 나는 그냥 눕는 풀잎(민초)이다. 서둘러 연두빛 안색이 돌지 못한다. 봄은 곧 올텐데 바람이 너무 차다. 두터운 안개가 걷히고 뜨는 정말 옳은 태양과 밝고 둥근 달을 보고 싶다. 그 길을 걸으며 봄이 세심하게 다듬는 길섶의 화초를 눈여겨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