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소실점消失點 Vanishing Points
한 민초(民草)의 나라걱정은 '풀 한 잎의 흔들림'일까? 이른 봄의 삭풍(朔風)에 지난 겨울 견뎌온 잡초 한 잎이 나부끼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나뭇가지가 흔들리면 얼핏 보는 눈에 띄지만, 풀잎이 흔들릴 때는 눈여겨 보아야 눈 안에 들것이다. 민심(民心)은 그렇게 삶(생활)의 저변에서 지하수처럼 흐르는 실개천 같을진대, 근래 땅위로 올라와 하늘까지 치솟아오르는 '민심의 분수(噴水)는 성층권까지 뚫을 기세다. 모처럼 함성으로 울려퍼치는 민심의 수세(水勢)가 우렁차서 민주국가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찬반의 신념으로 갈라져 서로 적대시하는 양상이 민심의 당당함과 소중함을 떨어뜨린다.
민심은 김수영의 詩처럼,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 보다 먼저 알어난다' 예민하고 날렵하다. 풀은 낮고 가냘프지만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 보다 먼저 일어난다. 이 詩에 민심을 비유하는 게 타당할지 모르겠지만, 이 시를 읽을 때면, '민초의 속성'을 또렷이 느낄 수 있다. '바람 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 보다 먼저 웃는다'에 이르면 가슴 탁, 무릎 탁 치게 한다.
이 민초의 마음을 위정자(爲政者)들이 정략적 찬반의 흙탕물에 끌어들여 나라의 민심을 두 갈래로 대립하게 모략할 때면, 근래의 탄핵 정국 속에서와 같이 계곡의 급류 보더 더 큰 수해(水害)를 유발시킨다. 이슬 먹고 비를 맞으며 살아가는 풀잎에 올바른 생각의 빛을 차단하여 누렇게 변색되게 하고 시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풀은 햇빛과 비(물)가 골고루 필요한 것과 같이 민초는 위정자의 올바른 양식과 담백한 위정신념(爲政信念)을 필요로 한다. 반면 그릇된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으로 남발하는 권력에 시달리면 추악하게 시들면서 오염된다. 오염수(汚染水) 속에서도 푸르게 자라는 잡초의 생명력도 또한 민초의 숨은 저력이지만, 도도히 흐른는 맑은 강가의 수초처럼 푸르게 살아갈 권리와 생존권이 마땅히 요구된다.
탄핵 찬반의 격랑이 흐르고 있다. 북한강 남한강이 두물머리(양수리)에서 만나 한강(漢江)에 이르듯이 강(江)의 속성을 잃지 않고 결국에는 한 뜻 한 마음으로 '나라의 강(韓江)'이 될 것이다(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민초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듯이 마침내 잔잔히 흐르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나라 걱정'이 아니라 그릇된 위정자들에 대한 원망이자 근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