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름 날 동쪽 하늘이 눈을 뜰 무렵에 강변 가는 산책 길 밤새 발로 차낸 듯 장마 뒤끝의 잿빛 구름 홑이불이 하늘 침대 한쪽으로 밀쳐져 있고 눈꼬리 아래로 쳐진 하현달도 아직 졸고 있었죠 더위 먹은 차도 이따금 동쪽으로 내닫는 시내 간선도로 전신주엔 광복절 태극기가 결려 있고 열대야(열 개의 대야) 분량의 물을 퍼붓던 사람들이 띄엄띄엄 오가고 있었죠 공원 길을 지나는데 울려퍼지는 가을 전령들의 합창 아는 이름 귀뚜라미 방울벌레 정도 뿐이지만 그 수가 십사 만 조금 넘는 이 작은 도시의 사람 수와 같을 거라는 짐작 그렇게 많은 전령들이 2020 가을 정기 공연을 펼치고 있었죠 나는 그저 표도 예매하지 않고 인터넷 검색도 하지 않은 채 익히 아는 공연 내용 그러면서도 느닷없이 듣는 노래처럼 막 깨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