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폭설 3

한설寒雪

눈(雪)은 눈(眼)을 가리며 내렸다. 발밑으로 가서 구두 밑창을 간질렀다. 구두보다 걸음이 더 깔깔거렸다. 눈은 걸음을 재촉했다. 걸음은 눈이 싫었지만 눈이 없는 곳은 골방뿐이었다. 눈은 걸음을 따라 길끝까지 갔다. 길은 끝나지 않았다. 걸음을 이끌고 개천을 건넜다. 나무에 슬쩍 어깨를 비비고 가지에 입도 얹었다. 눈의 입은 꽃방정이다. 나무 밑으로 가서 산부리를 간지른다. 산은 웃지 못하고 부처를 닮는다. 눈은 목어(木魚)를 두드린다. 산이 대신 참선(參禪)에 든다. 법문(法門) 솔깃한 눈은 산을 덮는다. 눈은 언어를 덮는다. 말 대신 바람을 읽는다. 어디까지 하애질지 망설인다. 눈이 내 걸음을 읽을 때쯤 나는 눈의 가슴을 본다. 피부는 차갑지만, 마음이 닿는다. 눈(雪)은 눈(眼)을 가리며 얼굴을 만..

2023.01.18

강설

지구에 천일 지난 애인을 둔 물방울이 구름 우주정거장에 머물고 있었다 아직 화성 보다 달에 먼저 가려면 햇살 모듈이 필요했다 지표면 복사열이 제작에 열중하고 있을 때 한 번은 애인을 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상까지 광범위하게 차가운 호흡의 강이 있었다 온도 마스크를 쓰고 들숨 날숨 건너다가 발이 얼었다 팔에 서리가 서렸다 온몸에 상고대가 피었을 때 여름에 홍수로 발광하던 애인은 빙판으로 누워 있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밤새 함께 얼어붙었다.

2021.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