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2012 제11회 동서커피문학상

담우淡友DAMWOO 2012. 12. 18. 11:58

몸으로 시를 쓰는 아기


                           조여랑


아기를 보면 시를 따로 쓰지 못한다
몸이 전부 시어詩語인 아기가 온몸으로


주어는 부드럽고 탄탄하게 문장을 시작한다
동사는 재잘재잘 강보와 베개를 돌아다니고
부사는 날렵하게 몸짓을 가누는데 빈틈없이 거든다
형용사가 꽃으로 피다가 나비 날다가
관형사는 몸짓의 대부분을 통통하게 의미를 살찌운다
목적어를 잊은 적이 없어서 알맞은 전치사가 제자리에 있고
인칭을 붙이지 않아도 분명한 주격
가정법을 쓰지 않아도 바라는 미래가 코앞에 있다
웃음과 울음과 짜증이 접속사로 물결 흐르며
귀여움이 과거분사를 지나 능동태를 붙잡고 언제나 현재진형이다


내 몸 안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을 때부터 양막 첫 장을 깨알 같이
행갈이는 내게 맡길 요량으로 한 번 고치거나 지우지 않고 썼다


아기가 몸으로 쓰는 문장을 읽다 보면
써 본 적이 없는 낱말이 수두룩
알려진 어휘로 받아쓰기에는 불가능한 글자들이 넘쳐난다
해독하느라 늪에 빠져 헤엄치다보면 시간은 의지 강한 미래 완료형
아기는 글귀를 달에서 별까지 옹알옹알 광속으로 쓴다
받아쓰는 것만으로도 공책이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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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작품:http://bookclub.dongsuh.co.kr/01_intro/prize11_winn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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