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457

달무리 지는 밤

7월의 상현달은 '엿보는 밤의 달'이다. 둥근 달의 밤에는 더욱 적극적이다. 가장 깊은 밤의 3시. 남향 창으로 들어와 방바닥을 건너 동향 벽 아래까지 뻗은 달의 눈빛을 따라 남향 창으로 다가가 저 무람한 달을 올려다 본다. 서남쪽 하늘에 낮게 떠서 내려다 보고 있다. 동그란 눈빛으로 창턱을 훌쩍 넘었다. 무더위 견디느라 활짝 열여젖힌 창문을 노크도 없이 아예 기척도 없이 들어와 침대 모서리에 홋이불 조각처럼 비껴 늘어뜨린 눈빛이 창백하다 못해 푸르다. 목재형 무니의 장판을 깐 방바닥에 길게 늘어뜨린 달의 '엿보는 눈길'을 읽는다. 앉은뱅이 책상 위의 노트북이 목격 되고, 검정 마우스가 달빛에 노출 되자 반쯤 숨어든다. 하얀 모노 젤펜이 서쪽으로 펜촉을 겨누고 잠재된 오늘의 일기를 서술하고 있다. 동향..

글(文) 2025.07.12

나의 가청 음역 可聽 音域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 3시 전후에 귀를 열면 앞산 먼 데서 소쩍이의 야상곡이 들린다. 소쩍! 소쩍!...아니 접동! 접동!으로도 들린다. 맹금류답지 않게 여리고 애잔하다. 배고픈 시절에는 '솥 적다'로 들렸다지만, 감자와 옥수수로 연명하던 내 어린시절 한밤중의 접동새(소쩍새) 울음은 까닭없이 슬프게 들리는 애가(哀歌)였다. 소쩍이의 노래가 사라질 쯤에 뻐꾹이가 8분음표 4분의 2박자 노래를 부른다. 가사 내용이 탁란(托卵)으로 부화를 기다리며 애간장을 태우는 기간인지 역시 애절하게 들린다. 4시쯤의 여명이 밝아오는데, 역시 탁란으로 아기새의 부화를 기다리는 희망이 담긴 듯 명랑하고 생기찬 가락이 16분음표 3잇단음의 두견이 목소리가 작은 도시의 아침을 깨운다. 잇따라 되지빠귀? 개개비? 잘 구별할..

글(文) 2025.07.08

겨울에 만난 사람

세숫물 열 대야로 퍼붓는 더위에 긴 머리칼 미끄러지는 목덜미가 땀 개울이었죠경추를 가로질러 손가락이 징검다리 건널 때면 흠칫 놀라는 송사리 여러 마리 자맥질이듯땡볕이 내려앉아 마구 봉침 쏘아댈 때쯤하얗게 바래지는 눈초리에 칸나의 빨강 신호가 전송을 시작합니다0 아니면 1이 아니라 0이면서 1이라고 1이면서 0이라며양자의 속도 시대에 머뭇대는 시점은 태양계 밖으로 나간 보이저의 거리라고외계인 닮은 내 마음의 여울에서 개헤엄 칠 거면 내 몸에 공전하는 물고기자리 4등성의 녹색으로 어깨를 건너가요 눈보라가 포란 중인 산간 숲에서 처음 만났을 때 유난히 따뜻했던 손목 아래손 안의 온기가 울창한 손금처럼 우거지던 '오! 그 해 겨울은 따스했네' 더위가 열 대야씩 퍼붓는 폭염 아래로 긴 머리칼이 흘러내릴 때 지..

글(文) 2025.07.06

사람의 시간 人間時間finite human

곧 매미의 노래가 시작될 것이다. 오랫동안 땅 속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는 걸 우리는 안다.땅 속에 들어가서 보지 않고 학습을 통해서 알고 있다. 내 집에 와서 반려견으로 지내다가 헤어진 시간이 겨우 10년 남짓 세상의 우리집에 머문 개를 체험해서 수긍한다. 개가 되어 보지 못한 채 사람인 자부심으로 슬픔을 느끼기까지 한다. 나를 소 부리듯 삶의 텃밭으로 내몰던 아버지는 팔십을 목전에 두고 지하로 내려갔다.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지만, 짠하게 회상한 시간은 띄엄띄엄 있다. 사춘기 나이 때 연심(戀心)에 몰빵했던 이종사촌 누나는 이유도 알 수 없는 삶의 그물을 예리하게 빠져나갔다. 어디에 정착했는지 모르지만, 의심하기 보다는 아까워서 눈물이 났던 시간이 잠깐 스쳐갔다. 나를 초등학교 때부터 손찌검 발..

글(文) 2025.07.05

잠 못드는 별

별뜰채 아파트에 밤이 깊어층층 창마다 켜진 불이 빛나는데대낮 제자리에서 휘황했던 기억이 밝아앞집 옆집 라인 건너 윗집 아랫집뒷동 삼 층 십 층 집까지 꺼지지 않는 빛 붙빛은 물병자리 되어 밤하늘 따르고북두칠성으로 높아지는 한밤중벌써 내일 앞에 마주한 사람들이설레어 잠 못드는 빛점 띄엄 점 건너 일 광년 매일 밤 별뜰채 아파트엔오늘이 모자라 밤중에 끌어온 내일 앞에반짝이는 빛이 별자리로 뜬다.

글(文) 2025.07.05

6月이 간다

6월만 아니가겠니4월이 갔고 5월도 가기를 망설였을까삭풍에 불현듯 작년의 12월 사흘도 일촌광음(一寸光陰) 지났다지나가지 아니할 별빛조차 있지 않았다 늘지나가던 바람이 다시 불어오듯이6월의 뒤꿈치 따라 7월이올텐데내 고장 7월은 샤인머스캣 익어가는 계절(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이육사)뻐꾸기 두견이 되지빠귀 노래가 총총 숲에 열리고을사년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무릇 청청장마전선의 선황(線況)이 오락가락 하는데도 불구하고백성이 영민하면 국체(國體)도 용상(龍象)이다 포도(葡萄)만 익어가겠니수박이 커가고 참외가 익기를 주저아니 했을까살구 자두 토마토 다시 온지 오래다산머루도 9월 이미 익어가 참이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묄쎄곶 됴코 여름 하나니'심지 깊은 국민은 찬바람에도 아니 떤..

글(文) 2025.06.28

자연법칙自然法則

새벽 인시(寅時:4시경). 뻐꾸기가 울고 있다. 4/2박자 노래가 아니다. 뻐뻑꾹 4/3박자 왈츠는 더더욱 아니다. 앞산 숲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득히 먼 꿈길 같은데...6월 하순 이맘 때면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몰래 낳았던 뻐꾸기 알이 부화 되어 한껏 자라고 이미 둥지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가끔 오목눈이 둥지 근처로 와서 지켜 보며 알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곤 했다면, 유전자(遺傳子)의 로드맵을 따라 당연한 상봉을 했을 텐데.....기쁨의 노래일까? 내 마음의 새벽에 노래가 들어 있지 않기 까닭일 수도 있다. 사람의 삶이란 가끔 노래가 켜지지 않는 낡은 컴퓨터 같을 때가 있다. 조용한 새벽에 음악 한 줄 없이 꿈길 같을 때 아련히 들려오는 뻐꾸기의 4/2박자 가락이 애닯게 귓전을 맴도는 것이다...

글(文) 2025.06.24

장마 霖雨 long spell of heavy rain

임우녀(霖雨女). 그녀가 돌아왔다. 삼단 머리채 빗발 죽죽 늘어뜨리고 맨발 찰랑이며 물기 흠씬한 드레스 차림으로 왔다. 목 언저리의 레이스 무늬는 그대로지만 수분 함량이 백퍼를 넘었다. 조금만 닿아도 내 발부리가 젖는다. 막무가내로 기대어 오는 내 어깨가 금세 축축하다. 정신 나갈 정도로 그녀를 사랑한 적이 있다. 고향집 안마당에 그녀가 내리면, 개구멍을 빠져나가 밖깥마당 가장자리 배수로에서 물미끄럼을 탈 때, 막내삼촌이 만들어 준 수수깡 물레방아를 요염하게 돌렸다. 물레방아를 돌리는 매끄럽고 서늘한 그녀의 섬섬옥수를 들여다 보고 있다가 슬며시 잡으면, 신경섬유를 타고 측두엽까지 오르는 촉감이 정수리에서 아찔하게 소용돌이쳤다. 어깨가 젖고 바지 무릎이 온통 그녀의 침샘으로 빨래가 되는 것도 모르고, 맨..

글(文) 2025.06.21

소쩍소쩍

밤이 깊어 목까지 잠겼을 거야짝의 마음 바닥에 발가락 닿지 않아솟을 적 내릴 적젖은 목소리가 수면위로 물안개 퍼지는 거야하현달이 안쓰럽게 밤하늘 건너고창가에 귓바퀴 닿은 나는짝의 목덜미에 손길이 닿고귓전에 귀를 대면 들리는 노래그렇게 접동이로 살아가고팠던 시절신록이 푸르다 못해 슾으로 깊었지머리끝까지 잠겨서 접으면 동그랗게 솟을 쩍 내릴 쩍잠을 벗고 맨몸으로 풍덩했을 거야돌아눕지 않는 짝의 등에 입술 닿고 싶어소리가 적다 소시쩍 노래다변하지 않는 목소리가 밤 속에 잠겼을 거야 새벽이 오면 목이 잠길거야.

글(文) 2025.06.19

개굴개굴

저물녘 강변 둑방길 옆 긴 논두렁이 악보였어요가로등이 비추고 있었고테너의 맹꽁이와 알토 음역의 참개구리가 같이 읽네요소프라노 파트 맡은 국도변의 차들이 읊고 가는 팔분음표참새들이 꾸밈음을넣을 때 노을이 여운을 물들이네요 베토벤 현재 버전의 전원교향곡 도입부내 귀는 자꾸 물가 쪽으로 기울고물결의 크레센도 청음이 징검다리 돌아가네요오선을 긋는 수면 위에 백로가 사분음표 올리면자맥질 하는 버들치의 스타카토 저음이 갈대 끝에 걸리고내가 맡은 심금 악절에 아그그땅거미 기어오르는 목덜미에 바람이 간지럽네요 4악장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는 합창에개밥바라기의 냉콩국수 저녁참이 당기듯잊었던 그리움이 한 악절 더 길어지네요함께 두 음역을 맡았던 메조소프라노 강가의 세레나데간주곡에 넣어 까치노을 붉었던 그 날의 듀엣 맹꽁..

글(文) 202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