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5월 8

여왕을 만나다

초록 잎새 짙어가는 가로수 아래 오색 연등 걸린 아침의 거리 봄잠 늦은 집집마다 햇살 먼저 조용히 깨운다 밝은 녹색 청소차가 바지런히 골목을 돌면 엎드려 있는 차 밑으로 그늘막을 짓는 길냥이 한 아저씨는 산을 다녀오고 한 아줌마는 강변 산책로를 돌아오고 5월 여왕의 크레놀린 받쳐 입은 초록의 드레스가 풍만하다 햇살 고이는 가슴골과 젖무덤 기슭에 어리는 살빛 모성 녹색 젖이 여울져 흐르는 레이스 솔기따라 돌 지난 나무가 아직도 젖을 먹고 올봄에 나온 풀잎들은 단체 수유 중 젖을 뗀 꽃과 시작하는 꽃들이 갓길까지 늘어선 거리 나는 여왕의 보통 백성 칭얼대던 유년의 기억을 쫓아 여왕의 가슴 안으로 든다 풀냄새 로션 향기가 매혹을 뿌린다 이슬 맛 물기가 함초롬해 코와 입이 어지럽다 엄마,라고 부르기를 간청하며 ..

글(文) 2023.05.15

날들

5월의 초록 둥근 가슴에는 아이들 세상의 날이 들어 있고 (그 세상 제법 귀여운 으름장이 넘친다^^*) 아이 자식들이 정하지 않았던 부모들 세상의 날이 들어 있고 ( 그 세상 제법 무거운 고민이 넘친다 -.-;) 망월 동산에 바람이 되어 부는 사람들의 날이 들어 있고 ( 그 동산에 꽃 안 핀 적 없으리!!) 내가 이 세상의 사람이 된 날이 들어 있어 나는 그 날마다 다시 사람이 되는 깜냥을 느끼는데 아무 날도 없는 누나의 그 달 잠지 같은 장미가 피고 있고 텃밭 엄마의 무명 적삼 같은 찔레꽃이 덩달아 피고 있어 파란 하늘 바탕화면에 초록 마구 짙어가는 나무들이 클릭해도 열리지 않는 아이콘이다 5월의 가슴 보다 작은 사람들의 가슴에 세상 밖의 수다가 안으로 들어 오고 더 작고 좁은 내 기슴에 저장해 두었던..

글(文) 2023.05.04

숲에서 나무가 되어

오월의 나무와 마주 설 양이면 질문하지 않는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나무처럼 푸른 적이 있을 텐데 왜 다시 푸르러지지 않느냐고 나무가 묻지 않는 질문을 할 때 적어도 다시 봄을 맞은 사람으로서 삶의 앞이 미세먼지 투성이어서 미처 준비 못한 색이라고 더 다채로운 낙엽을 짐작하기 때문이라고 오월의 나무 아래 서려면 이미 나온 대답을 내 놓지 않는다 들어 보지 못한 질문을 상상해야만 한다.

글(文) 2021.05.03

사월에서 오월까지

기억해야할 다짐들이 두텁다 배운대로 힘이 된 함성이 아침 햇살 붉은 산을 오르고 한꺼번에 바다를 읽은 교과서 밖의 오류에 관해 정답을 밑줄 치지 못한 한숨과 살균하고 찍은 눈도장에 실핏줄 금이가던 월말 이월한 근심이 이자로 불어 현금 창구가 자꾸 웃음 맴도는 노동 인출기 앞 불혹에도 살 떨리는 그리움에 눈물로 묘비를 읽는 학습의 불충분이 도려낸 살점처럼 흰 철제 울타리를 넘어 말을 거는 장미의 안녕 사람 앞에서 종종 걸음 이어가다 결국 길가 나무로 날아가는 참새 아이들이 와야 늦은 봄이라도 진짜 봄이라는 빈 운동장에 높이를 갖지 못한 다짐들이 쌓여 있다 첨성단 돌멩이만큼 반듯하게 기억의 두께 단단하려면 머릿속의 대용량 메모리 늘려야겠다 등줄기 모든 디스크에 클러스터 수백 겹 더 끼워 넣어야겠다 기억은 부..

글(文) 2020.05.19

5월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지만 달력에 날짜 하나 빠짐없이 다시 등장하지만 오월이 끝나기 전에 달력을 떠난사람들은 숫자 빼곡 다시 채운 오월이 와도 그 날의 푸른 여운이 나무 마다 무성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문자조차 보내지 않는다 그들이 남기고 간 녹색 의지와 어투 새들 보다 더 낭낭했던 노래 누구나 듣고 있으면 녹색 파도가 들과 산으로 물결치는데 햇살에 은색 언어 여울 굽이굽이 반짝이는데 그들은 소리 없는 땅의 문자로 오월을 서술한다 봄이 되면 다시 싹이 트는 기억으로 말을 한다 묘비는 이마를 대고 듣는 유일한 경로 유월이 가고 칠월이 와도 땅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귀가 열린 사람에게 풀잎 소리로 들린다 오월은.

글(文) 2020.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