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분류 전체보기 923

천변공원

그 공원에 가면 자기가 하는 말에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아 자기가 응답을 하는 분수가 있다 나무들이 가만히 서 있고 의자와 잔듸들도 잠잠하다 그네가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말 소리 내고 있지만 분수가 하는 말은 귓등으로 넘긴다 분수는 목청껏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귀 기울이는 사람도 잘 모른다 더운 바람이 뭔가 아는 눈치로 분수 곁을 지나가면 분수의 말투가 슬쩍 흔들린다 바람은 댓글도 없이 가버린다 분수의 말을 받아 적는 수면이 가장 잘 알아듣는 듯 윤슬 반짝이며 물결 짓는다 귀 없이 꼼꼼히 알아듣는 걸 보면 자기들끼리 통하는 언어가 제법 푸르다 사이사이 삽입 되는 새들과 매미의 참견이 겉돌지만 초록 빛깔로 동색이다 그 곁에 말없는 베롱나무 꽃이 얼굴 붉다 분수의 시원한 말 속에 은밀한 고백이 들었을까 ..

글(文) 2022.09.20

쉬운 알밤 접기

"~♪ 산꼴짜기 다람 쥐 아기 다람 쥐/ 알방 한 알(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알밤의 계절이 다가온다. 도토리의 계절이 멀잖다. 다람쥐의 먹이 수렵과 저장이 부지런해지는 가을이 코앞이다.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알밤을 줏으려고, 새벽잠을 깨우던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늦가을 고향에 가면, 알밤을 까서 노랗게 말려 두었다가 돌아갈 때 내어 놓는 어머니의 딱딱하고 달달한 '말린 밤의 추억이 있다. 어머니는 가을 따라 아주 오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났고, 알빰 떨어지는 계절은 다시 온다. 알밤 줏으러 가을 바람 타고 고향으로 갈까나. 가지 못하고 알밤을 접어 본다.

반딧불이 접기

M소년 반딧불은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F소녀 반딧불을 찾아 냇가의 갈대 숲 위를 헤매고 있었죠. 달조차 잠든 밤 마침내 고마리 잎 아래서 호롱불을 켜고 손짓하는 F 소녀를발견하고 사뿐히 내려앉았죠. 결혼할 나이가 찰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그들의 시간은 너무 짧아서 순수하고 간절하면 잡아서 당길 수도 없는 시간을 밤이 한 뼘으로 줄여주었죠. 사랑의 입맞춤이 끝나면 이승을 뜨는 M과F가 어디 한둘인가요. 그들의 빛은 밤하늘 별이 다시 빛나듯 냇가의 어는 갈 숲에서 다시 빛날테니까요. 사라져간 지난 여름의 반딧불이를 생각하면서 색종이로 접어 봅니다.

꽃병

유화(油畵)의 장점 중에 '터치의 자연스러움'이 있다. 안료를 묻힌 붓을 자유롭게(아무렇게나) 칠하거나 찍어도 그 결과는 억지로 만들어 찍은 것 같지 않다. 그러한 붓자국들이 모여 형태를 이루고 색의 군집을 형성했을 때, '자연의 발걸음이 지나간 자국'처럼 자연스럽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그림이 도시적 감성이라면, 미완성인듯 거친 표면의 '터치의 자연스러움'의 작품은 거친 전원의 감성을 지닌다. 어쩌면 '현대회화의 출발점'은 바로 이 자연스러운 터치로부터의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커피 내리는 시간

창밖으로 본다 내리는 비를 비가 내리고 커피가 내린다 비는 건물 벽에 금을 그을 때 '보인다'의 실금이다 커피는 포트 바닥에 고일 때 '내리다'가 보인다 한국의 경북 북부에 내리며 아프리카 중부 오른 쪽 사막을 보인다 원주민의 피부가 초콜릿 감촉이다 *분나(커피)에 젖은 옷자락이 내 유년을 펄럭이는 누이의 치마 같다 성당 벽 스테인드글래스 눈빛을 한 미사에서 *베아트리체를 처벌한 *교황에게 그은 X표 성호 그는 커피한테 세례를 주고 날개돋친 면죄부가 하늘을 잔뜩 흐렸다 커피가 수녀의 옷을 적시며 비가 창밖에 내린다 죄 없는 누이의 묵주처럼 또륵또륵 금을 긋는다 금은 지우는 권력이다 창밖의 비가 나뭇잎에서 오늘의 구슬로 구르고 사막의 커피는 바다를 건너와 방울방울 고인다 도기 컵 안으로 세게 내린다. 원주..

글(文) 2022.09.05

무료로 얹혀 사는 마음

DAUM에서 T-스토리로 이전하라고 했을 때, 기분이 좀 그랬다. 관리비 한 푼 안내고 살다 보니 '저 쪽으로 가라'고 하는 말이 썩 기분좋게 들리지 않았다. 주인장이 어떤 처지나 사정이어서 부득이 그랬다손치더라도 '저 쪽'을 가리키는 방향이 아스팔트 도로라도 이삿짐을 옮기는 짐수레가 꽤 덜컹거렸다. 무료로 얹혀 살면서 내가 한 일이라곤 여러가지 데이터를 만들어 이 방 저 방 꽉꽉 채우는 짓 뿐이었는데 그게 주인장한테 무슨 덕이 될지는 전혀 알수 없었다. 데이터가 값이라도 짱짱해서 주인장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헛간의 무슨 곡물이라도 되면 모를까 돈이 될만한 테이터를 생산했다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넓고 너른 공간을 맘껏 쓰고 있었는데, 저 쪽으로 가라니까 지레 소침해져서 계륵이라도 되면 모를까 잡동사니 ..

글(文) 2022.09.03

블로그 새 집

무료 임대주택 DAUM 블로그에서 이 곳 T-story 새 집으로 이사 가라고 했다. 집세 한 푼 안내고 살다 보니 가라고 하면, 예, 하고 가는 입장이 되었다. 새로 이사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정이 쩔다 못해서 블로그를 버릴까...욱! 했지만, 가진 게 살아온 데이터 뿐이니 이 걸 버리면, 내가 살았던 SNS 사회생활의 궤적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T-스토리라는 새 집에서 다시 이어갈 사이버 생활이 기대 반 설렘반, 주인장의 환영 인사를 받았으면서도 서먹하다. 전 블로그에서 해오던 짓을 셔츠 앞 단추 풀고 두 다리 쭉 뻗은채 계속하기가 선뜻해지지가 않는다. 뭣땜에? 콕 집어 말 할 수 없지만, 하여튼 얼굴 없는 새 주인의 익명성 실존을 느끼기까지 짧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

글(文) 2022.09.02

매미 다르게 접기

제일먼저 노래하기 시작한 ~ 츠르르르르(약간 시끄러움) 말매미 맑고 싱그런 목소리의 ~맴 ~맴 참매미 ~스스스스, ~스것 ~스것 ~스것 ~스으으으 것, 생기발랄한 애매미 바람 부는 미루나무에서 아련히 들리는 ~쓰름 ~쓰름 ~쓰름 쓰름매미 여름 k팝 아이돌 싱어들이 대거 출연했다. 삼복 더위를 건너 폭우의 전선을 넘어 흠뻑 젖은 모든 걱정 위로 땡볕처럼 쏟아지는 아이돌 스타들의 양양한 오래 소리들으며 그들을 한 이미지로 색종이 접는다.

집중호우

나의 건기는 스무 고개 넘을 때부터였다 자작고개 넘은 아침엔 조금 흐렸고 뺑치고개 넘어올 때 여름이 깊었다 우기로 접어들 기미가 뒷산을 넘어왔다 밤나무가 먼저 이슬에 젖었고 꾀꼬리가 햇살을 물어다 음표를 걸었다 빗방울은 연주 되었다 쟁반에 구르는 개복숭아 같았다 서른 강을 건널 때 윤슬이 수면을 덮었다 그 여름이 열 번 우기를 연습했다 마흔의 바다에 달이 조금과 사리를 부추겼을 때 해파리도 상어도 습기를 채우지 못했다 세월은 가뭄처럼 건조했다 쉰밥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던 수십 번째의 여름 어딘지 모르게 땅이 아프다는 전갈이 종종 건기의 발열과 우기의 확진을 징검다리 건넜다 아마 하늘이 땅을 보고 울었을 것이다 나의 식사는 언제나 쉰내가 났고 땡볕 여름이 반복하여 땀범벅일수록 온난화의 수은주는 숨을 헐..

글(文) 2022.08.16

자기기입식조사보고서

코로나가 열아홉 번 우리 집 앞을 지나갔다 이 십 다시 이십 일로 인을 친 현관을 슥 훑어보고 슬기로운 방역 생활 안내 설명을 읽었을 것이다 어느 항목에서 빈틈이 붉었다 더블 베이컨 샌드위치의 짠맛을 보았다면 탑승할 우한 행 항공편 예약했을 것이다 초여름 느슨해진 손소독과 흘러내린 마스크 바람을 들이키는 폭염에게 작업을 걸었다 실외기 연결선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증상이 증식을 시작했다 주말이 도망을 쳤고 격리가 몰려왔다 주사기가 세 번 팔죽지를 찌른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후유증이 부리는 기승에도 도피 따위 사실 없이 선전한 전력이 소소한 여름 마침내 코로나가 우리들 머리맡까지 점령한 전황을 작성한 보고서 낱낱이 방역 지휘 사령부에 제출했다 이천이십이 년 칠월 삼십일일 아침 수복할 때까지 생활 전선..

글(文) 202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