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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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비는 푸른 비

여느 때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리네구름 아래 사는 풀다운 풀을 적시네나무다운 나무를 적시네 꽃답지 않은 꽃은 축축하네이파리답지 않은 잎사귀는 번들거리네 비를 사모하는 바람이 부네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리게 불면비의 길답지 않아 빗줄기가 헝클어지네사랑이 삐뚤어져서 폭우가 되어땅 위에 사는 나무와 풀이그답지 못하게 흔들리네눕네 김수영 시인의 풀잎이 금방 일어나지 않네커다란 눈에 푸른 닭똥의 방울이 듣네언제나 과거를 미리 말하는 강수량 위에 여느 때처럼 비는 수직으로 내리네지평선 가로 위에 바람을 적시네 바람다운 바람을 뿌리네풀과 나무와 꽃이 연합종횡하네.

글(文) 2025.05.09

정말 5월인가?

해님이 자러 간 사이 수은주가 앙탈을 부린다. 옷장에 넣어 두었던 패딩을 꺼내 입으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밤 사이 온순하게 동침하지 않을 거란다. 세탁해서 개어 넣었던 차렵이불마저 꺼내와 덧 덮으란다. 상현달이 밤의 강을 건너며 '푸른달'의 눈빛을 스쳐가도, 별들이 긴 밤의 시간 반짝여도 수은주 그녀는 행짜를 거두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을 개의치 않는다. 사람 됨됨이가 사람 다워야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사람이 계절의 변화를 순순히 인식해야만 5월의 온도를 맞출 의향이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이 온도계를 쥐락펴락 후욱 후욱 붉은 막대를 휘두른다. 그들에게 수은주의 높낮이 권리를 맡기고 싶지 않다. 온도에 민감해서 근접한 입김에도 전신이 성감대라 순식간에 감정이 더워진다. 고등어 썩는 입냄새..

글(文) 2025.05.08

정물 사진 정물화

실물 과일과 그릇을 설치해 놓고 그릴 여건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과일을 오래 놓아 두면 상해 버린다. 과일을 우아하게 받쳐 줄 그릇도 어울리는 게 흔치 않다. 그럴 때면 인터넷 이미지 사이트를 뒤진다. 깜찍한 구도(構圖 composition)를 갖추고 맛깔나게 조명한 사진이 넘쳐난다. 색깔과 내용이 변하지 않는 사진을 다운 받아 화면으로 보면서 천천히 오래 작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는 이미지다. 실물이 풍기는 현실감(現實感 the sense forthe real)-리얼리티(reality)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실물(實物)과 나(我) 사이에 투명유리처럼 끼어 있는 이미지가 바로 사진(寫眞)이기 때문이다. 평면회화와 유사한 성질을 가졌으면서도 다듬어진 이미지로 밖에 그 이상의 표현 동기를 주지..

수채 정물화 2025.05.04

밤비 봄비

내가 사는 집들의 숲에는밤에 비가 시작되면 그가 몰래 창 너머 젖어들면잎사귀 잠잠한 집들이 깨어나투둑 투두둑평소 말 없던 지붕에서 거는 말귀 닫은 반나절 긴 문이 여는 입나비잠 뒤척이던 사람마저 쫑긋가뭄에 메말랐던 민감 촉감 깨어나 오월의 신록을 머금은 아침봄 이른 꽃들이 마친 서술 아래푸른 낱말 촘촘히 적고 있는 집들의 숲을 건너온몸으로 봄의 여왕 환영하는 산섬섬옥수에 자지러진 나무들이 녹색으로 질리고한 집의 나무에서 눈 뜬 나는물관에 닿은 혈관으로 수유(授乳)를 시작부푼 오월의 가슴에 숨이 막혀 나는 침엽이 되고 싶은 활엽입니다한 그루의 신념으로 뿌리내린 행복이시간 지긋한 그저 그러함수다를 이어온 비가 낮에도 도랑또랑하면다 젖지 못한 말투가 유연해진다지구에 사는 평범한 나무로써 비의 말을 듬뿍 들..

글(文) 2025.05.03

꽃🌺4월이 가네

피는 꽃과 피어야 하는 꽃피어야만 하는 꽃과 피지 않으면 안 되는 꽃이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네늘 올려다 보기만 했던 사람들은 내려다보는 꽃의 시선을 알 겨를이 없었네습관이 된 눈을 깜빡이는 아침에서 저녁까지액정화면 속에서 흩날리는 꽃잎을 자주세상을 서술하는 쪽지로 읽었네독서를 앗아가는 꽃들이 만발했네꽃가루가 분진으로 퍼지고 수정을 거부한 씨방이 열매를 미뤘네내려다보다가 아주 내려온 꽃을올려다보다가 내려다보는 사람들은머쓱한 버릇이 된 저녁에서 밤까지 두리뭉실싱그럽게 피는 새벽을 올려다보지 않았네바닥에 뒹구는 꽃잎을 내려다보며곧 오월이 오는 아침을 달력에서 수평으로 보았네아직 올려다보는 꽃이 남아 있어목덜미가 시릴 때까지 완강한 슬픔이꽃으로 피는 계절을 신봉하고 있었네피지 말아야 할 꽃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글(文) 2025.04.30

병아리 떼 뿅뿅뿅

집앞 공원 놀이터에 근처 유치원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있다. 미끄럼틀과 그네와 시이소오랑 '하루생활계획표'를 수행하고 있다. 잎새 푸르러 가는 나무들이 빙 둘러 바라보고, 내려다 보고 있는 눈부신 햇살의 시선이 빠짐없이 총총하다. 가끔 부드러운 바람이 다가와 아이들을 만진다. 아이들은 바람에 신경 쓰지 않는다. 햇살이 아무리 밝아도 눈을 가지리지 않는다. 미끄럼틀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안아 주고 밀어 준다. 가만히 서 있던 그네가 활기차게 움직인다. 아무렇게나 올라 타도 시이소오는 불평하기는 커녕 머리가 땅에 쥐어박혀도 발랄하게 튕겨 오른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문장을 뛰어 넘어 기후의 언어로 퍼진다. 나무가 듣는 푸른 어투다. 햇살이 엿듣는 금빛 어휘다. 바람이 살짝 주어 담고 가는 낱말의 ..

글(文) 2025.04.26

시간이 멈춘 사랑을 수리해요

새 감각을 갈아 끼워 봅니다오후 세 시에 멈춘 방향이 서쪽입니다어제 까치노을이 산등성이에 빛났지요짜릿한 바늘이 아직 동쪽입니다저물녁 커피 잔 쪽으로 돌려놓을까 했지요 마음 하나 빠진 귓바퀴가 가온음 따라 구르는지육각 별 드라이버 찾아 나섭니다중추 라인에 헐거운 나사를 조여 봅니다종아리 쪽에 울리는 저음 한 소절점점세게 겨드랑이로 오르는 아리랑 중간 악구허리에 감아봅니다가슴이 정오입니다 신경질을 태엽삼아 움직이던 시간이 있었지요낡은 롤렉스였어요 그 것 무료로 팔고손목에서 벗어난 아침이 밝아왔네요 평등을 충전하며 이십사 시간 노동이 즐거울 때쪽쪽 빠는 외식 때가 늦은 밤이 길었잖아요측은한 기쁨이 삼경 지나 새벽입니다 연민의 바늘이 침엽처럼 우거지면한 그루 사철 푸른 속마음 이아름들이로 자라겠죠삶의 나이테가 ..

글(文) 2025.04.24

춘추전국春秋戰國

내 나라의 영울호걸들이 나라의 정체(政體)를 이어갈 출사표를 발원하고 있다. '말의 칼'을 휘두르며 신념의 눈빛을 번득인다. 자신이 구국의 인물임을 어필하기 위해 적토마를 채찍질한다. 은빛 갑옷을 걸치고 때로는 긴 삼지창을 꼬나든다. 금빛 찬란한 투구를 쓰고 메두사의 형상이 새겨진 방패로 제몸을 가린다. 나라(國)의 가슴이 안 보이는 대지에 서서 좌우고면하는 백성들 중에 왜소한 몸체로 끼어 있는 나는 나라의 손가락이라도 잡고 싶다. 그 손을 내밀어 잠깐 잡아주게 할 수 있는 영웅을 상상한다. 달리는 말에서 내려와 황금 투구를 벗고, 은빛 철갑을 철걱거리며 손이 아닌 얼굴을 낮추고 따스한 미소를 던지는 호걸을 만나고 싶다. 유일하게 내가 지닌 '투표의 권력'으로 말의 칼이나 번득이는 사이비 영웅을 그의..

글(文) 2025.04.23

충성 忠誠 faithful

충성!------5260부대 보병 경례 구호는 '충성'이었다. 상관이나 선임병을 만나면 걸음을 멈춘다. 발을 모은 다음 꼿꼿이 선다. 오른손 다섯손가락을 모아서 팔을 위로 꺾는다. 손바닥은 아래로 손등을 위로 하여 오른쪽 눈썹 끝에 날쎄게 갖다 붙이며 "충성!' 힘차게 외친다. 같은 동작의 답례를 받고 나면, 주고 받은 신뢰가 전우(戰友)라는 카테고리에 게시(?)된다. 군대(軍隊)라는 조직 알고리듬의 첫 기호에 해당한다. 이 충성은 상관이나 선임병 개인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군대 뒤에 소프트웨어처럼 깔려 있는 나라, 즉 국가(國家 nation)에 대한 충실한 믿음이자 신뢰다. 하드웨어처럼 단단하게 결속 되어 있는 국민(國民)에 대한 보호와 사랑의 파일(pile)이다. 성실-의리가 들어 있는 loyal..

글(文) 2025.04.22

산문散文을 겯다

운율(韻律) 따라 문장을 짓다 보면, 감정의 구속(拘束)을 느낀다. 내재율(內在律)조차 자기 리듬을 강제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 따라 기분 따라 주절대고 싶어진다. 산문(散文 prose)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문장의 삽짝문을 열어젖뜨린다. 초가지붕 아래의 툇마루에 앉으라 한다. 눈을 들어 앞산을 다가 앉힌다. 숲을 먼저 보라하고 나서 나무를 더듬게 한다. 소나무, 도토리나무, 갈참나무, 서나무, 느티나무.....껍질의 질감 따라 잎사귀 모양 따라 잎맥과 어긋나기, 마주나기 그루마다 다른 모양을 서술하다 보면 산이 통째로 가슴 안에, 아니 눈 안에 가득 찬다. 골짜기의 약수터로 이끈다. 바위 몇 덩이 모려 웅덩이를 만들고, 나무막대기를 세워 걸어 놓은 빨강 파랑 플라스틱 표주박이 정겹다. 산행온 ..

글(文) 2025.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