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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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

어린 시절 잠깐 마주본 시간을 세월의 물길로 아득히 흘러 보낸 뒤, 지긋한 나이(elderliness) 의 길목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 만나야 할 까닭이나 원인은 고사하고 시간과 장소의 좌표조차 찍혀 있지 않았다. 그대로 생의 뒤안길로 가버릴 수 있었다. 잊었다고 아쉬웠거나 그리움조차 구불구불 자작고개 비탈길이었을뿐, 문득 유년의 그 기억이 스쳤을 때, 아! 그 애 그 얼굴.....그냥 지나가는 하루와 같았다. 그런데 다시 시작하는 아침처럼 만났다. 시간은 빠르게 유년의 기억으로 돌아갔지만, 장소는 되돌아갈 수 없어 디지털 회로(回路)를 걸었다. 나를 기억하느냐는 문구를 액정화면에 실어 보내자, 헛! 달(月)에서 오는 웹 전송처럼 전화가 왔다. 010 스마트폰은 빠져나갈 울타리 없이 곧장 귀청으로 목청..

카테고리 없음 2026.10.03

내가 확인될 때

현관문이 먼저 나를 클릭한다디지털 열쇠는 딸림화음이다5잇단음 보표 밖으로 앉아 있는 택배 상자가 온음표매일 미뉴엣 리듬같지만 다카포 기호 같은 악구의 아침 택배다어제밤 결제한 금력의 내가 분명해 진다 늘 나는 희미하다택배는 나 보다 주소와 장소를 찾아온다금력의 출처 따위 슬쩍 못갖춘 마디의 8분쉼표다 어느 위치에서 촛점을 까맣게 칠하고 있든 말든노래는 전깃줄 위의 참새가 한 악절이다내게는 소리의 늘임표가 일도 없다공원의 송풍기 굉음이 불협화음 연주할 때겹줄 세로 그을 권력이 없다 커터로 상자를 열면 나를 아는 물건이 까꿍한다기다린 시간이 간주곡을 지났는데 나 보다 어린 물건이층간의 소음처럼 뛰는 발이 예쁜 그 것이다자란 완주곡이 여전히 G선상 아리아 같은 이기적 유전자 흐름으로거실 바닥을 차지하듯 내가..

글(文) 2026.09.29

흠 없는 사람

가씨 만년남은 이따금 운(運)이 없는 날이라고 푸념한다. 운이 그에게 온 적이 있었는지 모른다.나씨 중년남 어제 레버리지 주식이 떨어졌다고 , 주택담보대출을 후회한다. 그이 주택은 로열 층 아파트다. 다씨 만년녀는 하나 뿐인 며느리가 자주 오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1년 같이 사는 계획이 처음부터 깨진 상황이다.라씨 MG남은 혼기가 넘도록 청첩장을 안 쓴다. 뻐꾸기 둥지 같은 집을 가질 수 없다고 한다. 마씨 정치녀는 비례 국회원이 된 후 네거티브 정치신념에 열심이다. 비례대표제가 선정(善政)의 가늠자가 될까? 바씨 어느 정당 대표는 싸워서 이길 것이라고 포효한다. 뜨럼프일까 뿌틴일까. 사씨 한 교수남은 AI의 미래가 찬란하다고 한다. 현재 그의 논지가 무서운 인공지능이다.아씨 상담전문녀는 모든 사람의..

소묘 2026.09.24

귀뚜라미 세레나데

엘이디 가로등은 밝게 빛나고내 걸음 소리는 자기 음역에 없는 음이었나 걸음 사이 길섶에서 뛰어나온 검정 인견 쉬폰 원피스의 귀뚜라미 좁다란 수로 건너 수풀 언덕엔틀림없이 짙은 잿빛 인견의 연미복 귀뚜라미지가로등 언덕에서 부르는 에스쁘아 세레나데추석이 멀지 않아 선물다운 여친을 기다리나 원피스 그녀가 수로를 건너 뛴다어디에서나 귀가하는 사람들의 현관문 여는 소리밖에서의 활기와 안에서의 기다림이 만나는 목소리가 선선한 음보어디에서나 여친을 부르는 케이 팝 열창인 귀뚜라미네들 가로등 줄지어 환한 초저녁 나는 노래하지 않는 저녁의 사람귀뚜라미 노래에 음보를 맞추며 가로등 아래 걷는다귀뚜라미 사랑의 악보를 귀로 읽으며아름답게 깊어가는 저녁을 눈으로 듣는다.

카테고리 없음 2026.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