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전체 글 1439

두 번째의 하늘 열림

신단수(神壇樹) 하늘이 처음 열리던 날은잿빛 구름 뒤로 세룰리언 색 창공이 푸르렀을 것이다 구름을 창(窓)으로 삼은 사람들이바람에 열리는 순간을 섭리로 삼았을 때햇살 같은 언어가 대지 위로 내리는 광경 속에서접은 무릎에 젖어드는 이슬을 읽었을 것이다 읽은 음소들이 혈맥을 타고 가슴에 다달아 뇌리까지 오르는 동안박달나무 껍질에 적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천 번을 수 차레 넘어 홍익인간의 긴 뿌리로 아름들이 깊어졌을 것이다 비의 두께를 상형(象形)으로 적다가창이었던 구름에서 내리는 소리와젖은 땅에서 피어 나는 영상과몸에서 울리는 음성이 어우러지는 순간을 땅이 있고 하늘이 있다고 엄히 적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소리의 바른 음이 햇살처럼 분명해졌다적으면 적을 수록 불어나는 천지인(天地人) 생각에 마침내붙인 이..

글(文) 2026.10.11

가을에는

가을에는 계절 밖으로 떠난 것들을 생각해요한철 짧은 며칠 버스킹하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간 싱어들 목숨 같은 악보를 나무와 땅 속에 남긴다고 했어요떠나지 못한 우리는 그 걸 어떤 악기로도 연주하지 못해요인터넷 화면에 유령처럼 떠돌지만그 건 복사한 사본이죠그 계절 다시오면 생음으로 들어요그리워지는 까닭이잖아요 가을에는 사라진 것들을 아쉬워해요고층 아파트 단지 화단에 복고풍 신상 차림 화사한 꽃녀들열흘 못 넘긴다고 쓴 소리 해댔지만가장 작은 열매로 내년의 귀환을 약속한댔어요웹 사이트 구석구석 잔영이 도배되어 떠돌지만그 건 해묵은 복제품이죠화려한 시절 다시오면 고운 생얼로 볼테지요보고 싶어지는 이유잖아요 가을에는 영영 떠난 이들을 생각해요 한생 착하디 착하게 열심히 억척으로 의연하게 살다간 이들자기 보다 나..

카테고리 없음 2026.10.09

잊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

어린 시절 잠깐 마주본 시간을 세월의 물길로 아득히 흘러 보낸 뒤, 지긋한 나이(elderliness) 의 길목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 만나야 할 까닭이나 원인은 고사하고 시간과 장소의 좌표조차 찍혀 있지 않았다. 그대로 생의 뒤안길로 가버릴 수 있었다. 잊었다고 아쉬웠거나 그리움조차 구불구불 자작고개 비탈길이었을뿐, 문득 유년의 그 기억이 스쳤을 때, 아! 그 애 그 얼굴.....그냥 지나가는 하루와 같았다. 그런데 다시 시작하는 아침처럼 만났다. 시간은 빠르게 유년의 기억으로 돌아갔지만, 장소는 되돌아갈 수 없어 디지털 회로(回路)를 걸었다. 나를 기억하느냐는 문구를 액정화면에 실어 보내자, 헛! 달(月)에서 오는 웹 전송처럼 전화가 왔다. 010 스마트폰은 빠져나갈 울타리 없이 곧장 귀청으로 목청..

카테고리 없음 2026.10.03

내가 확인될 때

현관문이 먼저 나를 클릭한다디지털 열쇠는 딸림화음이다5잇단음 보표 밖으로 앉아 있는 택배 상자가 온음표매일 미뉴엣 리듬같지만 다카포 기호 같은 악구의 아침 택배다어제밤 결제한 금력의 내가 분명해 진다 늘 나는 희미하다택배는 나 보다 주소와 장소를 찾아온다금력의 출처 따위 슬쩍 못갖춘 마디의 8분쉼표다 어느 위치에서 촛점을 까맣게 칠하고 있든 말든노래는 전깃줄 위의 참새가 한 악절이다내게는 소리의 늘임표가 일도 없다공원의 송풍기 굉음이 불협화음 연주할 때겹줄 세로 그을 권력이 없다 커터로 상자를 열면 나를 아는 물건이 까꿍한다기다린 시간이 간주곡을 지났는데 나 보다 어린 물건이층간의 소음처럼 뛰는 발이 예쁜 그 것이다자란 완주곡이 여전히 G선상 아리아 같은 이기적 유전자 흐름으로거실 바닥을 차지하듯 내가..

글(文) 2026.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