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곡이 여물어 가을을 알리지만
꽃을 보낸 열매가 알곡과 더불어 가을을 떨어뜨리지만
가을을 가을답게 맞이하는 나무는
온 몸으로 가을을 서술한다
벌레가 받침을 먹어버린 이파리에서
땅에다 일기를 적는 낙엽에 이르기까지
나무가 빠뜨린 이야기는 해와 바람이 거들어 적는다
공원의 뜨락까지 가득 낙엽을 채울 때면
그 페이지에 서리도 한 문장 젖빛으로 적는다
탈고를 끝내고 선명하며 간략한 줄거리로 곧
또 한 해의 한 권을 땅 위에 꽂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