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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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文)

생각하는 아침

담우淡友DAMWOO 2023. 7. 2. 08:07

곤충 사체들

 

 땅 위 생명의 모든 존재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일요일 아침이면 삼 층에서 일 층까지의 습식 인조대리석 계단을 닦는다. 건식 대리석이 아니라서 물청소를 하지 않고 대걸레와 수건으로 일일이 닦는다. 층계참에서 층계 하나 하나 닦다 보면, 모래나 먼지 외에 벌(바다리), 나방, 파리 등의 사체를 쓸게 된다. 심지어 작은 거미줄 집을 지은 실거미나 쥐며느리 같은 벌레도 포함 되곤 한다.

 그들은 어느 날 열린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는 나가지 못하고 아사했을까. 갈증에 말라죽었을지도 모른다. 층계참에 다육이를 포함한 화분이 놓여있었지만 아무런 도움이 안됐던 것 같다. 방충망 친 창이 열려 있어 바깥 공기가 통하고, 방충망 없는 프로젝트 창문이 빠꼼히 열려 있었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인조대리석 계단의 통로가 그들의 무덤이 된 것이다.

 사람이 집을 짓고 깔끔하게 만든 대리석 계단통로에 우연히 들어왔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 그들의 불가항력은 무엇일까. 사람은 인간의 초월자(여기서 초월자超越者는 인간이라는 기준에서 일컫는 그 너머의 존재)가 설계했을 우주 속의 지구 위에서 각종 재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불가항력은 또 무엇일까. 섭리의 오류일까? 초월자의 방임일까. 초월자가 일컬어 준 용어가 아닌 인간이 지어낸 어휘로 인간 자신들을 위한 설명이나 구실을 언급하고 있을 뿐, 어느 한가지도 섭리의 온당이나 오류를 객관적으로 인식 밖에서 기술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이 만든 대리석 계단 통로에서 곤충들은 어떤 이유나 필연을 그들 언어로 서술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인간은 그나마 여러 언어로 초월자의 섭리를 사고하고 기술하며 자기 존재의 필연과 우연을 성문화(成文化) 하고 있다.  혹 사람이 곤충들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화된 언어로 이해할 게 뻔하다. 인간 역시 초월자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생각하고 기술하는 한계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고등생명이라는  사람이 만든 인조대리석 계단 통로가 무덤이 된 곤충들과 초월자가 설계한 우주와 땅 위에서 생노병사의 과정을 건너가는 사람의 존재가 뭐 다를게 있을까 생각하게 한다. 청소를 하며 그들을 쓸어내는 사람의 이치와 오류는 무엇이며, 각종 재난으로 인간을 쓸어내는 섭리의 오류(?어쩌면 당연한 자연질서이거나 초월자의 설계인지도 모른다)는 무엇일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곤충과 사람은 동일한 우주와 땅 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엄연하다. 그러면서 곤충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집을 짓고 계단을 만든다. 그런  인간과 초월자가 한 우주 속에서 동존하고 있는지는 더욱 모르겠지만. 

 

카오스(chaos):무작위로 찍힌 물감 자국을 볼펜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물감을 덧칠한 작품.

뤼튼(wrtn)AI에게 의뢰한 수정본

Me: 위와 같은 '생각'을 글로 썼습니다. 이론적(theoretical)으로 나타나는 오류(mistake)를 지적하고, 수정(modification)해 주세요.

 

wrtn: 땅 위 생명의 모든 존재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일요일 아침마다, 사람들은 삼 층에서 일 층까지의 습식 인조대리석 계단을 닦는다. 이러한 계단들은 건식 대리석이 아니기 때문에 물로만 청소할 수 없고, 대걸레와 수건을 이용해 일일이 닦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층계 하나 하나를 닦으면서 먼지와 모래 외에 벌, 나방, 파리 등 여러 종류의 곤충들이 존재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곤충들은 어느 날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 것일까? 갈증과 기아에 시달리다 죽게 되었을까? 이를 통해, 사람과 곤충의 생존과 죽음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이 도출된다. 인간은 이 행성의 창조자가 설계한 우주 속에서 다양한 자연재해와 맞서고, 또한 인간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인위적인 재난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정말로 섭리적 오류일까? 아니면 창조자의 방임일까? 사람이 만든 대리석 계단 통로에서 곤충들은 인식할 수 없는 이유와 필연에 의해 생을 마감해간다. 한편 인간은 자신들의 언어와 사고를 통해 창조자의 섭리를 이해하고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인간의 존재의 필연과 우연을 인식하고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사람이 곤충들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엔 하려고 해도 그들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인간 중심적일 것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창조자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한계에 얽매여 있다. 고등생명체인 인간이 만든 인조대리석 계단 통로가 곤충들의 무덤이 된 것처럼, 창조자가 설계한 우주와 지상에서 인간과 곤충이 공존한다. 이들이 생명과 죽음의 미스터리에 직면하며 질문한다. 곤충들의 죽음을 가져오는 계단으로 인간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오류는 무엇인지, 다양한 재난으로 인한 인간의 죽음 또한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이 거대한 우주와 땅 위에서 곤충과 인간이 공존하는 가운데, 그 불가사의함을 완전히 깨닫고 이해해가는 과정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Me: 멋져요.감사합니다.

 

wrtn: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다른 질문이나 도움이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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