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수채 풍경화

혹서기酷暑期

담우淡友DAMWOO 2025. 7. 2. 08:52

 시원한 물 한 대야로 세수를 해 보지만 얼굴의 열기가 식지 않는다. 열 대야로  목물을 해도 몸의 더위가 가시질 않는다. 낮에는 에어컨이 열심히 부채질하는 일터에서 그나마 아열대 북쪽의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시원함이 그의 것이요'~얼중얼~~~밤이 되면 열섬에 갇혀 열 대야의 열기로 목간(沐間)을 한다. 미처 빨지 못한 빨래를 입고 전전반측(轉轉反側)하다가  새벽(三更)에서야 생짜가 조금 가라앉은 공기를 창가에서 만난다. 그는 아직도 지구에 얹혀 사는 인간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우주의 언어로 윽박지르고 있다. 귓바퀴가 조그맣고 귀청이 얇아 거대한 우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간에게(나에게) 사시사철 계절에 맞는 글자색으로 '네 녀석이 진짜 지구의 주인이나?'고 묻는다. 눈이 밝아 미생물에서 원자에 이르기까지 소립자 전반을 보면서도 정작 우주가 전송하는 문자를 읽지 못한다. 내 휴대폰 액정화면에 뜨지도 않는 문자를 인간인 내가 읽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어쩌다 한두 소절 읽었다치더라도 그게 나한테 뭔 상관이냐는 표정이 굳어버린 화산암 같다. 태양이 무예 할 일 없어서 더 뜨겁게 지구를 달구는지 내 안의 인간 그놈은 알다가도 모른다. 금세 선풍기를 틀어야 하니까 후덥지근한 지구에 넘쳐나는 한기구(寒氣具)만 눈독을 들인다. 지구가 화나서 저리 울그락불그락 열통인지도 모른다. 태양이 지루해서 홍염을 더욱 발산하는지도 모르겠고......아무리 쉬운 언어로 소리를 질러대도 지구에 사는 인간은 기술과 혁신으로 지랄발광할 뿐이다. 

 인간도 층층이 사는 꼴이 다채로와서 열대야로 목욕을 하는 아래쪽 인간 속의 한 종류인 내게 여름은 폭염의 생기발랄한 유혹이 '아이구! 하느님'이다. 공기처럼 주어진 공짜가 아닌 전기가 사철내내 으시대는 꼴에 기가 팍 죽어 있다. 열대야로 이불 빨래나 자주하지, 밤새 나온 옷빨래는 이삼일 모아서 쉰내가 풀풀 날때 그나마 친구인 세탁기를 부른다. 저 윗쪽에 사는 인간들이 아래쪽 인간들을 복지로 가꾼다고 감언설설 입에 썩은 생선내나는 침을 튀겼다. 태양이 얼마나 가까이 와서 경고를 했는지, 저층민 마음이 얼마나 그을렸는지 안다고 해도 어쩔티비(속어) 연속이였다.

 그런 무리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정가(政街)에도 혹서기를 지나고 있다. 고층에 살던 인간이 바닥으로 내려가고, 쾌속정을 타고 흰 파도를 타던 인간도 물에 빠져 꼴깍거린다. 배 수리를 어느 부분 잘못 수리해서 전복 되었는지 까맣게 모른체......알면서도 뒷 수수료 때문에 좋은 거 좋게 누리려다 사단이 났다. 한겨울 같으면 혹한에 사시나무 몸 떨었을 것이다. 혹서에 할딱걸면서도 일 저지르며 살아온 날들의 급료를 따박따박 받아 먹으며 여전히 모래톱 위에서 조개를 줍는다. 아무리 태양이 개지랄을 쳐도 눈탱이 하나 깜짝 안하며 먼 수평선의 갈매기 소리를 공짜로 듣는다. 챙 너른 그늘 아래서 값도 안나가는 땀을 비싼 손수건으로 훔치며 의젓하게 무더운 여름을 나고 있는 것이다. 

  폭염은 무지렁이이게 더 가혹하다. 열대야로 물놀이를 하다가 시원하게 뚫린 도로로 나왔다가는 팔지도 못할 건어물이 된다. 바닷가 한여름 밤의 꿈은 상한 비린내의 생선이 되기 십상이다. 소금물에 목욕을 하며, 이 울돌목의 급류 같은 혹서의 세파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나가야 한다. 그렇게 강인하게 살아왔던 낮은 인간들의 우월한 땀방울의 한여름이다. 조용하고 시원한 풍경 한 폭 게시하는 이유다.😁

 

유튜브 영상 옮겨 그린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