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심금이 가야금 같았던
박권숙님이
2021년 6월11일
지인들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생애의 간이역에서
먼저 떠난 아버지를 따라
지구 밖으로의 긴 여행을 떠났다
출발 날짜는 알려졌지만
돌아올 날짜는 친지들조차 알지 못했다
지구는 한 사람을 비우는 대신
또 한 사람을 채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비우지 않아도
땅의 질량이 변하지 않으며
발자국조차 바람같이
전혀 무겁지 않으리라는 걸 또 알고 있었다
시조 한 편 한 편이
여행의 시간 보다 무거웠던 박권숙님
돌아올 때 꼭 문자 주세요
아버지를 만난 시조 한 편 읊어 내려주세요
하늘 간이역에서 잠시 정차하고 있을 님에게
어느 꽃 홀씨 담은 문자를 띄운다.
하늘 간이역
문자 몇 잎 매단 가지 푸르러져 갈 때
늦은 시간도 아닌데 서둘러 꾸린 여장
대합실 빠져나가는 바람마저 돌아본다
전화 몇 음 채록한 가야금 가락 열둘 처럼
이승의 연줄 튕기며 울리던 울음 속에
젖은 채 개어 둔 날이 하늘 따라 푸르른데
책으로 땅에 남아 짙은 녹음 울창하게
환송하는 댓글이 꽃으로 피는 승강장 옆
박권숙 밴 홀씨 하나 나비 등에 타고 있다
문자 몇 잎, 전화 몇 음, 책 몇 그루,
나의 페이지에서 푸르던 분이었지만,
남은 책에서 뿌리가 깊어지는 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