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산문散文을 겯다

담우淡友DAMWOO 2025. 4. 18. 08:34

 운율(韻律) 따라 문장을 짓다 보면, 감정의 구속(拘束)을 느낀다. 내재율(內在律)조차 자기 리듬을 강제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 따라 기분 따라 주절대고 싶어진다. 산문(散文 prose)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문장의 삽짝문을 열어젖뜨린다. 초가지붕 아래의 툇마루에 앉으라 한다. 눈을 들어 앞산을 다가 앉힌다. 숲을 먼저 보라하고 나서 나무를 더듬게 한다. 소나무, 도토리나무, 갈참나무, 서나무, 느티나무.....껍질의 질감 따라 잎사귀 모양 따라 잎맥과 어긋나기, 마주나기 그루마다 다른 모양을 서술하다 보면 산이 통째로 가슴 안에, 아니 눈 안에 가득 찬다. 

 골짜기의 약수터로 이끈다. 바위 몇 덩이 모려 웅덩이를 만들고, 나무막대기를 세워 걸어 놓은 빨강 파랑 플라스틱 표주박이 정겹다. 산행온 사람들의 뭇 입술이 거쳐갔을 것이다. 그 잔흔에 내 입도 닿는다. DNA 판독할 겨를도 없이 표주박이 기억하는 사람들의 입술이 상큼한 숲의 향기다. 숲의 새나 다람쥐의 주둥이도 닿았을 거라는 상상을 서술한다. 물가 주변에 피어 있는 달개비,찔레나무 꽃, 제비꽃을 기억한다. 바위에 낀 이끼도 한 문장이다. 

 산을 내려오기 전에 추억이 오솔길 따라 올라온다. 내가 사내아이면 머리 헝클어진 계집애가 때절은 치맛자락을 팔락인다. 걸음이 동당거리고 주고받는 웃음이 찰랑거린다. 갯가의 징검다리를 건너올 때면, 여울목에 흩어지는 윤슬이 반짝인다. 태양이 따갑게 눈부신 날이  아그그~ 발목까지 물결이 젖는다. 붕어 두어 마리가 고무신 안에서 파닥거리고, 손가락 문 가재의 앞발이 째려보는 계집애의 눈꼬리 같다. 

 농번기에 옆집마저 종일 빈집일 때 뒤란에서 익어가는 자두열매 불그스름한 볼따구니가 다 익기도 전에 입안으로 잠입한다. 잎사귀 울창한 앵두나무 녹색 그늘 속에 속살처럼 익어가는 앵두알이 빨갛게 완숙되기도 전에 우수수 입안으로 떨어진다. 사내아이는 아빠가 되고 계집애는 엄마가 되지만, 아들 딸이 아직 없어 가족의 구성이 미흡하다. 주변의 어른들이 웃겨서 웃을 때 웃지 않고 버티는 신랑각시의 진지한 표정이 꽤재재하다.

 추억은 산문(散文)이다. 씨줄날줄 엮어서 하루가 열흘 되고, 올해가 내년까지....머언 어느 날 아침의 눈부신 날까지 구구절절 주구장창 기다란 문장이 된다. 멋진 척 운율을 입지 않고, 영특한 함축(含蓄)을 쓰지 않고, 자갈 위에 물 흐르듯 주절주절 삶의 여울을 건넌다. 그래서 산문은 수다스럽다. 입담이 꽃이다. 꽃은 열매가 뒤에 있다. 산문은 주렁주렁 열매 군(群)이다. 

 

 

 

어린 시절의 散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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