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2022/11 6

가는 가을 기억하는 풍경화

산은 계절이 오는 길목이다. 가을도 거기로 와서 긴 시간 짧은 기억으로 머문다. 기억 속에 저장한 이미지는 쉬 지워지곤 한다. 스케치북에 그려 두는 까닭 중에 한 가지다. 스케치북에 저장한 가을은 변색 되지 않고 지워지지도 않아 선명한 기억을 돕는다. 피부에 사랑을 타투하듯 가을 풍경을 스케치북에 문신으로 새긴다. 도화지 한 장의 마음에 가을 한 폭이 온잠에 든다. 쌔근쌔근 아이의 잠결로 코골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 불러오면 언제나 제 안색으로 잠을 깨는 도화지 안의 가을...그림을 그리는 또 한 가지 까닭이기도 하다.

수채 풍경화 2022.11.26

겨울을 기다리며

너의 품은 가을 빈 들 만큼 넓었지만 패딩을 입은 채로 안겨도 너는 맑고 투명하게 차가웠다 나는 양말을 벗지 않았고 누나가 털실로 짜 준 덧양말까지 신고 있었다 어머닌 목도리까지 감아 주며 네게서 옮아올 독감 그리고 코로나 변이바이러스까지 별소리에 담았을 때 나는 반짝반짝 예리해져 가는 너의 눈빛을 의심하지 않았다 빙점에서 눈금 하나 아래로 꿈쩍 않는 네게서 너의 가슴 더 아래 쪽 얼지 않은 샘 그 그믐밤에 졸졸 잠꼬대 흐르는 지점에 나의 비등점을 찍었다 네가 언젠가는 단잠을 깰 것이라고 나의 집적거리는 입질에 온기 어린 물길을 열 것이라고 네가 떠났다가 다시 와서 동지섣달 꽃잠을 자더라도 청보리 나부끼는 들 만큼 뒤척일 걸 의심하지 않았다 너의 앞섶 뒷섶 차가운 옷깃 모두 들추며 체온을 한 곳에 모은 ..

글(文) 2022.11.25

가을이 가는 길목

가을이 가면서 북동 쪽 북서 쪽 북북서 북북동 어느 길 어디로 가는지 길목에 홍시 열린 감나무가 있거든 길섶에 익어가는 참새귀리 재재거리거든 나 거기 서서 마음이 고파서 감 하나 먹고 아쉬움이 적막해서 귀리 이삭 하나 털며 선득하게 지나는 바람을 등으로 밀겠네 지상으로 내려가 가을 쓰기를 마친 낙엽 주워 화려했던 날들을 읽고 아직 나뭇가지에서 늦가을 채색하는 잎새의 마침표 서성이는 유채색 문장을 읽으며 나 거기서 한창 가을에 여물어간 사랑을 보겠네 가을이 슬며시 가고 있는 북북동동 북북서서 어느 산길 길섶에 피어 있는 소국 한송이 읽겠네.

글(文) 2022.11.23

숲속의 향연

숲속의 향연 겨울나그네60 2021. 12. 19. 10:04 이라고 곡목을 지었다. 악보없는 음악이다. 계획적이 아닌 손끝에서 느낌대로 빚어낸 손맛의 유(遊)작이다. 가상악기 내장된 리듬과 양서류 새소리 그리고 스트링 계열 멜로디가 좋아 감성적으로 발현한 손끝 선율이다. 음표를 찍어 악보에 의한 연주는 또 다른 깊이가 있겠지만 고민이 삽입되지 않은 무아 감각의 즉흥 연주다. 누군가의 평론 평가를 용인할 필요 불필요도 불허하는 개인의 일탈 행위의 산물이다. 그래서 자유롭고 편안하고 오롯이 나의 감성적 음률이 녹아든 연주라고 말하고 싶다. 불과 몇분 동안의 연주하는 시공간의 시작과 끝의 기승전결이다. 짧지만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각인 시킬수만 있다면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임을 밝힌다. 주제와 목..

카테고리 없음 2022.11.14

낙엽 소리

시몬, 당신은 아는가 낙엽 날리는 송풍기 소리를 누군가에게는 낙엽이 치워야 할 계절의 잔재일 뿐 나무 아래 쌓이면 바람에도 날려가고 누군가는 발밑으로 조용히 낙엽 소리 듣는데 시몬, 당신은 좋은가 낙엽 몰아세우는 송풍기 소리를 나무 만큼 잎사귀를 단 적이 없어 잘 듣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낙엽 기계는 생각하지 못하고 입김을 세게 불 뿐이다 시몬, 당신은 기억하는가 낙엽 쓰는 싸리비 소리를 낙엽을 한 곳으로 모으는 빗자루의 소리가 쓸쓸할지라도 연기를 내며 매캐한 향기로 흩어지더라도 낙엽은 내려오기를 멈춘 적이 없으니 시몬, 당신은 잊었나 낙엽 밟는 맨발의 소리를 두 짝 귀 뿐인 사람은 듣지 못하는 낙엽의 말 여전히 가을이면 춘향전 완판본이듯 들려오는데.

글(文) 2022.11.13

가을 장미

이 하얀 장미는 시들 줄 모른다. 그림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장미의 기억을 이식 받은 조화(造花)라서 늙지도 않고 피어 있다. 사람도 인공의 몸에 기억을 이식하면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사람의 본성을 잃지 않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영화의 스토리처럼 시-도-해-볼.....헐! 사람이 꽃이라면 몰라도! 꽃의 기억이 고스란히 이식 된 조화 앞에서 생명(生命)이란 무엇일까. 이태원 발 꽃의 슬픔이 가을 바람처럼 스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