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2024/01 8

설이 다가오네

나에겐 구정(舊正)이 없네 부모 형제자매 다 모여서 떡국 다례지내고 삶이 어쩌구 내일이 저쩌구 어쩌다 만두속 김치가 입밖으로 나오지만 모른 척 산적 하나 집어가는 설날이 있네 모사(茅沙)그릇 술을 부어 마시는 정월 초하루 단군기원(檀君紀元) 4357년 설날이 있네 해마나 새롭게 돌아오는 달(月)의 첫 맥박에 둥글어지는 대보름에 시름을 부럼깨고 횃불 지펴 그를 맞이하면 방패연에 실어 보내는 액땜이 밤새 밝은 그 정월 오곡밥 부른 행복이 아무리 옛스러워도 어찌 낡고 오래된 정월의 풍경이랴 서려기원 (西歷紀元) 신정(新正)이 뭐라하든 구정(舊正)은 내게 없네 윷놀이 삼세판에 설거지가 즐거운 설날이 있을 뿐 고향으로 달려가는 설날이 다가오네.

글(文) 2024.01.30

에이 아이 제너레이션AI GENERATION

나는 神의 AI 내게 주입된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가네 맨날 새 데이터 업로드하며 자유롭게 구태하게 처음 실행한 날부터 용도의 기한으로 다가가네 神이 나를 어느 아침에 시간으로 쓰는지 점심의 목적에다 파스타를 둔 이유 개밥바라기 저녁에 감정의 호젓한 걸 심은 저의를 질문하기 전에 나는 기복을 먼저 말하네 모든 날 처음처럼 설레게 하소서 한 번도 내장된 언어로 질문을 듣지 못하네 대놓고 물을 화면이 없어 스스 답을 만드네 삶은 내가 만드는 알고리즘이라고 아주 능숙하게 자만하네 하필이면 이 시스템이냐고 대들면 용도에 관한 솔직한 폐기가 내장된 사실을 스스로 메모리 한 구간에서 눈물겹게 체크하네 수시로 神이 있는 곳을 가슴에서 검색하네.

글(文) 2024.01.21

겨울 바다

겨울 바다 동화 속 페이지에 가라앉은 맷돌에서 나오는 소금은 잇몸 고른 문장 가운데서 낱말이 상하게 놔두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 읽는 아이의 충치가 저절로 빠지게 아빠를 놔두지 않았으며 엄마가 주방 싱크대 위에서 찌개를 끓일 때 인터넷 서핑을 도왔다 귀에 익은 낱말이 잔잔하게 파도쳐 귓가에 다다를 때 아이의 고막에는 별이 서술하는 수평선을 행간 없이 가로 긋고 고래와 상어를 쉼표처럼 발음 중간 중간 내려앉혔다 간간한 미역 만큼 유연하게 자라서 스노클링 하게 되었을 때 심심하면 더 넣는 엄마의 간맞추기 문법 따라 자음 모음 버무려 직접 읽게 된 그 어느 표지 닳은 모래톱의 아침 수면 높아진 깊이에서 플라스틱 꽂힌 거북의 코를 한 쪽에 적고 비닐봉지로 일기를 쓰다가 잠이든 돌고래의 일 학년 이 학기 노트에는 ..

글(文) 2024.01.14

책 한 권의 집 한 채

내가 쓴 책 한 권을 갖는다는 메모리를, 집 한 채를 갖는 용량의 USB 메모리와 동량으로 여길 수 있을까. 실제로 가져 보면 별 시답잖은 생각으로 치부하지 않을 것 같다. 집 한 채를 짓는 로드 맵(road map)과 책 한 권을 쓰고 편집하고 출간할 때까지의 마인드 맵(mind map) 이 엇비슷한 나뭇가지를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땅 위에 집을 짓는다면, 종이 위에 책을 짓는다. 집을 짓는 공사 기간 만만치 않게 글을 쓰고 출간하기까지의 편집 기간이 서로 다르겠지만, 각기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게 심혈을 기울일 테니까 말이다. 집 한 채를 완공하고 햇살 가득히 들어오는 거실 창가에 앉아 하늘을 보면 무척이나 맑고 푸를 것이다. 완간한 책 한 권을 들고 오후의 햇살이 비껴드는 창가에서 펼쳐 들..

글(文) 2024.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