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권트가 길가에 나앉았다. 마스크도 안 쓴 입을 열고 곧추 앉아 있다. 가로수 나무가 우두커니 옆에 서 있는 건 서로 우두커니에 갇혀 있기 때문일까. 모짜르트가 저 하얀 치아를 입질하며 지나갔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가 검은 이빨을 부드럽게 핥은 적이 있을 것이다. 바이엘을 따라가던 고사리 손들이 저 입 속에서 음표를 파내던 시간의 자국이 생생한데 아침이 기지개 켜는 거리에서 우두커니에 몸을 맡긴 피아노 곁을 지난다. 경부선 철길 아래 굴다리를 가로질러 우회도로를 건너면, 황악산 골짜기서 발원한 계류가 직지사 경내를 질러 나와 중생들이 아기자기한 동네를 만지작거리며 내려온다. 잠깐 한눈을 팔겠지만, 추풍령 단전 아래서 출발한 직지천 중류와 손을 잡고 하류 천변에 이른다. 제딴에 서두른 눈친데 겨우 동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