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철없이 가을을 즐길 때
산은 온몸으로 가을을 앓는다
자리를 옮기지 않네
해가 뜰 때 그림자를 가늠하게
돌아앉은 적이 없네
가슴께로 오는 새는 끌어안고
등으로 오는 사람은 업어 주게
발돋움 한 적이 없네
나무는 뿌리를 내리게
수풀은 우거지게
한눈팔지 않네
언제 바람이 허리를 들출지
비가 정수리를 적실지
푸른 생각 견디던 가을이 와서
열이 펄펄 날 때
같이 엎드려 끙끙 앓네
앙상해진 뼈 바스라질까
허리조차 펴지 않네
별이 골짜기로 쏟아질 때
잠이란 든 적이 없네
떨어지는 열매 마르지 않게
젖 말릴 계획 아예 없네
기어이 모든 기억 지우지도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