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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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수채 정물화

10월의 정물

담우淡友DAMWOO 2013. 10. 9. 12:38

 시간의 정물



늘씬과 날씬의 부분 없는 나를 누군가가 그리고 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다소곳이 놓여졌다 다채로운 옷감으로 몸을 감싸고 손발까지
화장품을 바르고 표정을 가꾸었다 누군가에게 과일이 되고 싶은 생각
식량이 되고 싶은 욕망이 수북한 식탁 이었다 의자가 되려고 다리를 질질 끌었다
숟가락이 되어 입술 가까이서 입 냄새를 견뎠다 신발이 된 적이 있는데 흠뻑 젖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모자가 되어 해골 같은 머리뼈를 만질 때는 우월한 감정이었다
나를 주시하는 누구에게나 꽃이 되었다

가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저절로 아무것도 아니다 힐끗힐끗 지나가는 눈초리에
가로수 정도면 괜찮다 모든 발밑에서 소리 나는 낙엽이면 좋은 편, 매일 그 자리서
깜박이는 신호등이면 훨씬 나았다 길모퉁이 전봇대 아래 잘 묶인 용량제 쓰레기
봉투이기라도 하기를 바란 적이 몇 번인지 기억의 길이가 사계절이다
큰 맘 먹고 접시 곁에 있는 포크가 되었다 욕심나는 식품을 콕콕 찍어서 함박꽃 피는
입으로 나르는 동안 나는 뚜렷했다 지루해서 집어 던지면 소리가 났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누군가가 색칠하고 있다 빨간 곳을 노랗게 흰 곳을 뿌옇게
변색을 하는 동안 북북 지워지지 않게 나는 조금 꿈틀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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