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품은 가을 빈 들 만큼 넓었지만
패딩을 입은 채로 안겨도 너는 맑고 투명하게 차가웠다
나는 양말을 벗지 않았고
누나가 털실로 짜 준 덧양말까지 신고 있었다
어머닌 목도리까지 감아 주며 네게서 옮아올 독감
그리고 코로나 변이바이러스까지 별소리에 담았을 때
나는 반짝반짝 예리해져 가는 너의 눈빛을 의심하지 않았다
빙점에서 눈금 하나 아래로 꿈쩍 않는 네게서
너의 가슴 더 아래 쪽 얼지 않은 샘
그 그믐밤에
졸졸 잠꼬대 흐르는 지점에 나의 비등점을 찍었다
네가 언젠가는 단잠을 깰 것이라고
나의 집적거리는 입질에 온기 어린 물길을 열 것이라고
네가 떠났다가 다시 와서 동지섣달 꽃잠을 자더라도
청보리 나부끼는 들 만큼 뒤척일 걸 의심하지 않았다
너의 앞섶 뒷섶 차가운 옷깃 모두 들추며
체온을 한 곳에 모은 손길로 잠길을 열면
너는 마침내 사륵사륵 실눈을 뜰 것이라고
내가 패딩과 양말을 벗고도 으스스 안 떨 걸 예감해서
미리 만남의 동의서에 동그라미 를 쳤다
내가 자지러지는 서명을 휘갈겨 놓았다.
'글(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모歲暮the year-end (0) | 2022.12.26 |
---|---|
올드랭 사인 Auld Lang Syne (1) | 2022.12.04 |
가을이 가는 길목 (0) | 2022.11.23 |
낙엽 소리 (0) | 2022.11.13 |
가을 과자 (0) | 2022.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