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측간-황색연초 건조실-사랑채-안채-나락 저장고(파란색)-디딜방앗간으로 구성된 고향집. 지금은 측간과 건조실이 대형 차고로 바뀌었고, 사랑채는 그대로인데 안채는 리모델링으로 외관과 내부가 완전히 달라졌다. 파란색 곡물저장고와 디딜방앗간이었던 건물도 사라지고 농작물 야외 저장 창고로 바뀌었다. 오른쪽은 텃발으로 아직 그대로다.
사랑채 앞 바깥마당에은 콤바인 가을걷이를 하기 전 탈곡기로 나락을 털던 황토바닥이었다. 마을 앞 개울로 향하는 논두렁길이 이어져 있다. 뒷산에는 수령이 수십 년 되는 밤나무 그리고 갈참나무 소나무 등으로 우거진 잡목 숲이 울창했다. 한여름이면 꾀꼬리가 옥구슬 노랫소리를 들려주었고, 까치집 까치는 텃새 노릇을 톡톡히 했다. 접동새의 밤이 깊으면, 구슬픈 그 울음소리에 잠을 깬채 뒤척이곤 했다. 뒤란 감나무 아래 도깨비가 나온다는 삼촌들 놀림에, 또는 부엉이 소리에 사랑채에서 안마당을 건너 안방으로 돌아가는 길이 괜히 무섭기 도 한 집. 해마다 삼촌들과 아버지가 이엉을 엮어 지붕을 얹던 초가에서 개량기와 지붕으로 바뀌었지만, 기억은 여전히 초가지붕 추녀 밑에 둥지를 튼 참새 알을 꺼내 먹던 야생의 생활에 머물러 있다. 밤나무와 잡목들이 수종개량사업으로 사라지고 소나무 밭으로 탈바꿈했지만, 그 산에 올라 괜히 숲을 헤치며 오르락내리락 토끼를 쫓는 꿈으로 자라가던 어린 시절이 사라지진 않았다. 가을이면 알밤을 주으러 컴컴한 새벽부터 밤나무 아래를 기어다닌 기억하며, 어둠 속에서도 낙엽과 수풀 속에 떨어져 있는 알밤을 줍던 '밝은 눈의 어린시절'이 또한 생생하다.
그렇게 자란 집을 떠나 서울로 학교를 가고, 이어 군대를 가고, 제대후 7 년여 전국 방랑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고향집..............결혼을 하고 타향이 뿌리내리고 살아도 여전히 돌아가고픈 기억 저너머 가슴 찡해져오는 고향집이다. 돌아가 살 수도 없이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추억만이 종종 가슴 아리게 되살아나는 고향집이다. 나의 영원한 고향집이다. Forever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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