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열대야 2

더위에게

한 겹 두 겹 옷을 벗길 때마다 쇠골 뿐만 아니라 늑골까지 드러나는 내 몸 늘씬하지 않아 신박하지 않아 열린 창밖의 하늘에서 별을 복사해 붙여넣어도 달빛을 끌어와 끼얹어도 곁에 뉘고 싶은 딴 몸 하나 꿈꾸는 근육이 자라지 않아 아침 해가 수은주 한 칸 더 밀어 올려도 한 겹 옷을 껴입을 때마다 오늘은 낮에도 겉옷 한 겹쯤 벗기려나 보다 해안이 먼 내륙에서 사는 일상에 땀으로나 흠뻑 끼얹는 소확행 숨은 파일 업그레이드만 클릭 클릭하는 소프트웨어 대국 내 나라의 열대야 대책은 옷을 벗는 회수에 따라 마음의 이상 근육을 달래는 비책 언더웨어 한 겹 없이 상승 기온 벗어나는 수채화 플라워 프린트 브이 넥 롱 원피스 단 벌이면 어떠리 불쑥 자란 낮꿈 가리는 느티나무 끈 나시 그늘 한 자락이면 어떠리 만 원짜리 시..

글(文) 2022.06.27

좋은 여름 날

좋은 여름 날 동쪽 하늘이 눈을 뜰 무렵에 강변 가는 산책 길 밤새 발로 차낸 듯 장마 뒤끝의 잿빛 구름 홑이불이 하늘 침대 한쪽으로 밀쳐져 있고 눈꼬리 아래로 쳐진 하현달도 아직 졸고 있었죠 더위 먹은 차도 이따금 동쪽으로 내닫는 시내 간선도로 전신주엔 광복절 태극기가 결려 있고 열대야(열 개의 대야) 분량의 물을 퍼붓던 사람들이 띄엄띄엄 오가고 있었죠 공원 길을 지나는데 울려퍼지는 가을 전령들의 합창 아는 이름 귀뚜라미 방울벌레 정도 뿐이지만 그 수가 십사 만 조금 넘는 이 작은 도시의 사람 수와 같을 거라는 짐작 그렇게 많은 전령들이 2020 가을 정기 공연을 펼치고 있었죠 나는 그저 표도 예매하지 않고 인터넷 검색도 하지 않은 채 익히 아는 공연 내용 그러면서도 느닷없이 듣는 노래처럼 막 깨어나 ..

글(文) 202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