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전체 글 1220

겨울에 만난 사람

세숫물 열 대야로 퍼붓는 더위에 긴 머리칼 미끄러지는 목덜미가 땀 개울이었죠경추를 가로질러 손가락이 징검다리 건널 때면 흠칫 놀라는 송사리 여러 마리 자맥질이듯땡볕이 내려앉아 마구 봉침 쏘아댈 때쯤하얗게 바래지는 눈초리에 칸나의 빨강 신호가 전송을 시작합니다0 아니면 1이 아니라 0이면서 1이라고 1이면서 0이라며양자의 속도 시대에 머뭇대는 시점은 태양계 밖으로 나간 보이저의 거리라고외계인 닮은 내 마음의 여울에서 개헤엄 칠 거면 내 몸에 공전하는 물고기자리 4등성의 녹색으로 어깨를 건너가요 눈보라가 포란 중인 산간 숲에서 처음 만났을 때 유난히 따뜻했던 손목 아래손 안의 온기가 울창한 손금처럼 우거지던 '오! 그 해 겨울은 따스했네' 더위가 열 대야씩 퍼붓는 폭염 아래로 긴 머리칼이 흘러내릴 때 지..

글(文) 2025.07.06

사람의 시간 人間時間finite human

곧 매미의 노래가 시작될 것이다. 오랫동안 땅 속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는 걸 우리는 안다.땅 속에 들어가서 보지 않고 학습을 통해서 알고 있다. 내 집에 와서 반려견으로 지내다가 헤어진 시간이 겨우 10년 남짓 세상의 우리집에 머문 개를 체험해서 수긍한다. 개가 되어 보지 못한 채 사람인 자부심으로 슬픔을 느끼기까지 한다. 나를 소 부리듯 삶의 텃밭으로 내몰던 아버지는 팔십을 목전에 두고 지하로 내려갔다.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지만, 짠하게 회상한 시간은 띄엄띄엄 있다. 사춘기 나이 때 연심(戀心)에 몰빵했던 이종사촌 누나는 이유도 알 수 없는 삶의 그물을 예리하게 빠져나갔다. 어디에 정착했는지 모르지만, 의심하기 보다는 아까워서 눈물이 났던 시간이 잠깐 스쳐갔다. 나를 초등학교 때부터 손찌검 발..

글(文) 2025.07.05

잠 못드는 별

별뜰채 아파트에 밤이 깊어층층 창마다 켜진 불이 빛나는데대낮 제자리에서 휘황했던 기억이 밝아앞집 옆집 라인 건너 윗집 아랫집뒷동 삼 층 십 층 집까지 꺼지지 않는 빛 붙빛은 물병자리 되어 밤하늘 따르고북두칠성으로 높아지는 한밤중벌써 내일 앞에 마주한 사람들이설레어 잠 못드는 빛점 띄엄 점 건너 일 광년 매일 밤 별뜰채 아파트엔오늘이 모자라 밤중에 끌어온 내일 앞에반짝이는 빛이 별자리로 뜬다.

글(文) 2025.07.05

혹서기酷暑期

시원한 물 한 대야로 세수를 해 보지만 얼굴의 열기가 식지 않는다. 열 대야로 목물을 해도 몸의 더위가 가시질 않는다. 낮에는 에어컨이 열심히 부채질하는 일터에서 그나마 아열대 북쪽의 공기를 느낄 수 있다. '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시원함이 그의 것이요'~얼중얼~~~밤이 되면 열섬에 갇혀 열 대야의 열기로 목간(沐間)을 한다. 미처 빨지 못한 빨래를 입고 전전반측(轉轉反側)하다가 새벽(三更)에서야 생짜가 조금 가라앉은 공기를 창가에서 만난다. 그는 아직도 지구에 얹혀 사는 인간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우주의 언어로 윽박지르고 있다. 귓바퀴가 조그맣고 귀청이 얇아 거대한 우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인간에게(나에게) 사시사철 계절에 맞는 글자색으로 '네 녀석이 진짜 지구의 주인이나?'고 묻는다. 눈이 밝아..

수채 풍경화 2025.07.02

복숭아 戀情

네가 높다란 곳에 있을 때였네발그레한 물빛 미소를 짓는다는 소식낮은 곳에서 내가 귀 한 짝을 들어 올릴 때뜨거운 바람이 너의 향기 한 봉투번지내 투입으로 배달되었네받아든 나는 콧날로 봉투를 열고네가 나 없이 발그레 웃는 걸떨리는 각막에 옮겨 적었네다음 장으로 넘어갈 무렵7월의 태양은 거침없이 타올랐고이미 내게 와 있던 샤인머스캣 알알이달콤한 내 성질을 돋우고 있었네이제 난 너를 내 안에 넣으려고봉투 속에서 나온 시크한 낱말들을목 아래서 가슴골까지 고랑을 내어 글발을 심네단단한 너의 내면이 내 곁가리에서 잎 틀 때까지 나는 읽기를 미루네 너의 문장이 촉촉하게 침샘 흐를 때까지한 권이 되도록 아기자기 묶네앞뒤 표지에 분홍과 상아 빛 내력이 곱게아삭아삭 빛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