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개울 한 권
조담우
뱀 껍질 무늬의 자갈밭 표지를 넘긴다
무릎까지 빠져 읽은 페이지 둘레가 헤져 있다
배꼽을 외눈으로 뜨고 비스듬히 훑던
반 삭제된 버드나무 한 구절이 서 있다
쉼표 매달린 문장 끝에서 아래로 뛰어내린다
수면을 서술하고 있던 은빛 어절들이
분수 같이 튀어 오르는 전개부
없는 마침표
맑은 소리가 첨부된 문장의 첫 줄로 돌아가면
까무잡잡한 낱말들이 동네를 가로지른다
논두렁길을 재잘재잘 도랑 따라 달린다
한글 서투른 어른들이 동화책 좔좔 읽는 아이들을
징검다리 초입부터 침 발라 쓰고 싶었던 페이지
한 칸 띄어 쓴 풀밭으로 도망을 치면
땡볕 낱낱이 받아쓰는 물억새가 연필 끝 들어 올리고
두음법칙 벗어난 잠자리가 누락한 바람을 끼워 넣는다
문단 전체로 번지는 전설모음화 동작에
애기똥풀꽃 옹알옹알 물가로 고개 젖히고
여울 긴 물결의 단락마다 묵묵히 꽂혀 있던
시간의 서표들이 굽이굽이 글발로 걸어 나온다
걸음 멈춘 햇살 마냥 읽고 있다
영구 삭제를 시도한 적이 없는 내력
물총새가 빠르게 긋는 밑줄에서 마침표 망설이는 하류까지
한 계절의 고전이 두텁다.
-금상(대전시장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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