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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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文)

열섬에 갇히다

담우淡友DAMWOO 2017. 8. 8. 08:12

-새벽의 부분월식 날에

밤 세시쯤 여느 때처럼 
침대 모서리까지 끼어들던 달빛이 보이지 않는다
일어나 서쪽 하늘을 보니 열섬에서 막 빠져나오고 있는 달
세시 반 시각이었다


달 따라 나도 섬을 빠져나온다 
겨우 창턱에 다다라 구조의 손길을 기다린다
어제 낮부터 종일 밤까지 섬에 갇힌 채
몸을 묶는 땀과 씨름했다
형체도 없이 공격하는 더위를 막느라 온몸을 굴렀다
보호해 주던 런닝셔츠와 팬티마저 도망치려고 안달이었다 
셔츠는 제 살길 가라고 두 팔을 놓아주었지만
팬티만은 끝까지 중앙 기지를 지켜주었다 
아니 같이 죽거나 살자고 내가 놓아주지 않았다


새벽 전투가 창턱까지의 탈출로 소강 상태에 이를 무렵
마지막 발목을 빼고 있는 달의 안색이 노랗다
열기에 익은 듯 약간 붉어 보인다
구름 인파가 곁을 지나고 있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나도 현관 밖으로 완전 탈출하려면 가볍고 얇은 갑옷을 새로 입어야 한다
어제 낮 전투에서 땀에 절었던 갑옷을 그대로 입는다
에어컨이 있는 안전지대로 도착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


네 시....탈출하는 샛별을 따라 먼동이 막 산등성을 빠져나오고 있다
달의 호소를 무시할 수 없었던지 한 구름 떼가 잠시 달을 에워싼다


구름이 제 길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된 달은ㅡ보름 이틀 지난 하현달이
발가락만 빼지 못한 채 서쪽 산등성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마지막 힘을 내고 있다
나도 현관문 쪽으로 탈출구를 확보한다.




Ps:결국 추풍령 쪽에 주둔하고 있던 먹구름 부대 속으로 들어간 달.....
      안전한 탈출이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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