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시아닌을 다량 복용한 집 앞 공원의 느티나무
온몸에 드러난 홍조가 아주 붉다 못해 발갛다
뿜어져 나오는 홍염이 공원을 태우는데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고
모과나무 열매가 그을려 노르스름하다
그 아래 지나가는 나는 가슴을 데인다
단풍잎으로 입을 가린 짝꿍이 옆에 있을 때처럼 더워진다
눈을 못 떼고 있는 시리우스 새벽 별과 눈을 맞춰 농도를 낮추고
주택가 서쪽 골목에서 불어오는 시린 가을 바람으로 열을 식힌다
얼른 폰으로 찍어 전송한다
짝에게 눈을 비비며 들여다 본 후 저녁에 두고 보자는 앙탈이 생기기를 바란다
바로 온 답신
ㅋ~ㅋ~ㅋ
잠시 예쁘게 미운 한 잎 발 밑에서 찾는다
눈치챈 낙엽이 들어 본 언어로 말한다
마음도 나뭇잎 같아서 푸를 때와 붉을 때가 공중에서 지면으로 움직인다
지긋이 반복한다
그래서 나는 백팩의 멜빵을 힘차게 한 번 더 당겨 멘다
나도 붉게 타면서
멀리서 다가오던 코로나가 멈칫하도록
분명하게 흰 마스크를 콧등 위로 밀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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