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논에도 지금 쯤 벼가 익고 있겠지
겸손한 아버지 대신 자신만만한 맏형의 손에 자란 벼가
이견 없이 고개를 숙여 안으로 여물고 있겠지
벼멸구 견뎌낸 벼가 내면을 단단하게 채울 때 쯤에는
성숙한 메뚜기도 원숙한 몸짓으로 응원하고
방아깨비가 숙이네 정미소 전기 모터 소리를 낸다
뜸부기가 날지 않아 논바닥에 개구리밥 가득 띄우던 여름이
쓰름매미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뒷산 위로 올라가고
그 때 벼꽃은 지난해 가을 보다 눈부신 금빛 마련했을 것이다
코로나가 집앞 개울 건너 아스팔트 신작로를 따라 지나갔지만
마스크도 안 쓴 벼들은 마이삭 하이선 바이러스를 이겨 냈다
맏형이 아버지처럼 기대한 풍작을 암시하고 있었다
추석에 못 간 고향의 황금벌판을 타향의 논에다 펼쳐 놓았다
고향의 논에서 풍기던 벼이삭의 마른 풀 같은 향기가 바람을 타고 온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냄새를 흠뻑 마셔 본다
훌쩍
찬바람에 약한 콧속의 점막에 콧물이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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