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가다가 아무 데서나 커피 한 잔

담우淡友DAMWOO 2020. 10. 16. 08:16

포트로 팔팔 끓인 정수기 물을 텀블러에 담는다

크기에 맞게  체크무늬 천으로 만든 손가방에 넣고 

커피 스틱을 두어 개 손가방 주머니에 티스푼 한 개와 찔러 넣는다

 

한집 한방에 사는 짝꿍과 가벼운 옷차림에 마스크와 차양 모자를 쓰고 나선다

소방도로 골목을 벗어나 꽃사과 붉게 익는 공원을 지나

환삼덩굴 우거진 철길 굴다리를 관통해서

포도송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떠난 비닐하우스 단지 길을 따라

갈대와 억새꽃 화사한 고수부지 강변길로 들어선다

 

연보라빛 들국화가 가녀리게 수줍은 제방길

공중전화 버튼만한 크기의 이름 모르는 흰꽃에 스마트 폰을 대고 검색을 한다

백공작-미국쑥부쟁이,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 같은 빨간 트롬본 형 꽃송이에 노란 꽃술을 가진 둥근잎유흥초, 

살아생전 엄마의 백양목 저고리빛 구절초.....

 

연자색 꽃의 초봄과 까만 과육 열매로 땅바닥에 점묘 그라피티를 그리던 벚나무 가로수 제방길에서

길이 시작된 무지개다리로부터 다섯 번째 벚나무 아래서

짝꿍이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마른 풀 위에 펴고 일일 번개 카페를 차린다

 

폭우의 장마와 마이삭 하이선 태풍이 휩쓸고 간 뒤 코로나까지 성깔을 부리지만

큰물 지나고 드러난 고수부지 강변 따라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 강 하구 같은 갈대 숲에

경남 창녕 화왕산 한 뼘 만큼의 눈부신 은발의 억새꽃이 함께 어우러진 가을의 노변 카페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크래커를 종이 컵의 커피에 적신다

가을 조각을 먹는다

 

황소의 등처럼 익어가는 논의 벼가 고속철 다리까지 펼쳐져 있고

뻔질나게 오가는 고속철과 나란히 달리는 고속도로, 그리고 이따금 낡은 소리를 내는 경부선 철로의 기차....

여기는 도농접경지역의 작은 도시 

가다가 아무데서나 마시는 주말 커피 한 잔의 가을 카페

 

폰으로 기념 셀카를 찍는다

짝꿍이 수줍고 나는 어색하지 않다

벚나무의 잎새가 바람에 날리고 검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잠시 길바닥에 내려 놓은 커피 잔 옆을 지나간다

 

어디서나 커피 카페 차리기에 좋은 가을 들녘.

 

들국화 쑥부쟁이의 미소
억세지 않은 억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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