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시조 시인 박권숙

담우淡友DAMWOO 2021. 6. 23. 07:25

시조의 심금이 가야금 같았던

박권숙님이

2021년 6월11일

지인들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생애의 간이역에서

먼저 떠난 아버지를 따라

지구 밖으로의 긴 여행을 떠났다

 

출발 날짜는 알려졌지만

돌아올 날짜는 친지들조차 알지 못했다

 

지구는 한 사람을 비우는 대신

또 한 사람을 채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비우지 않아도

땅의 질량이 변하지 않으며

발자국조차 바람같이

전혀 무겁지 않으리라는 걸 또 알고 있었다

 

시조  한 편 한 편이

여행의 시간 보다 무거웠던 박권숙님

돌아올 때 꼭 문자 주세요

아버지를 만난 시조 한 편 읊어 내려주세요

 

하늘 간이역에서 잠시 정차하고 있을 님에게

어느 꽃 홀씨 담은 문자를 띄운다.

 

 

 

 

    하늘 간이역

 

 

문자 몇 잎 매단 가지 푸르러져 갈 때

늦은 시간도 아닌데 서둘러 꾸린 여장

대합실 빠져나가는 바람마저 돌아본다

 

전화 몇 음 채록한 가야금 가락 열둘 처럼

이승의 연줄 튕기며 울리던 울음 속에

젖은 채 개어 둔 날이 하늘 따라 푸르른데

 

 책으로 땅에 남아 짙은 녹음 울창하게

 환송하는 댓글이 꽃으로 피는 승강장 옆

 박권숙  밴 홀씨 하나 나비 등에 타고 있다

 

 

 

문자 몇 잎, 전화 몇 음, 책 몇 그루, 
나의 페이지에서 푸르던 분이었지만, 
남은 책에서 뿌리가 깊어지는 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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