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까치의 설

담우淡友DAMWOO 2023. 1. 21. 07:42

집앞 전신주 위의 까치 부부네 집에 구름 낀 새벽이 조용하다. 영하와 한풍이 행짜를 놓아도 설 아침은 전선을 타고 그 집에 온다. 까치의 설빔은 블랙 쉬폰 블라우스에 흰 카툰 스커트 차림의 아내와 같은 색의 슈트에 흰 바지 차림의 남편은 평상복 그대로다. 잠깐 내린 비로 클리닝을 하고 스쳐가는 눈송이로 먼지를 털었다. 평복 차림이 여느 때와 다르게 말쑥하다. 남편의 고향은 동쪽 골짜기 자작나무 숲 어느 우둠지다. 아내의 고향은 서쪽 지방도로변 미루나무 어느 꼭대기다. 아침엔 동쪽으로 세배를 갔다가 오후엔 서쪽으로 세배를 갈까. 정월 초입부터 베갯머리 갑론을박 치열했지만, 어느 쪽에도 부모님은 안 계신다. 막내작은 아버지와 큰 고모네 집에 액정화면 인사나 전하지. 새로 장만한 스마트 폰이 세뱃돈 만큼 깔끔하다. 남쪽으로 출가한 딸이 오려나, 강 이북 명산 자락으로 전출한 아들내외가 오려나. 까치 부부네 귀틀집 한 켠에 물어다 놓은 과자 부스러기, 벌레, 곤충 식품의 저장 용량이 수십 메가바이트다. 손주가 따라오면 물어다 놓은 사슴고기로 세뱃돈 줄까. 발라 놓은 물고기로 줄까. 이쑤시개로 꽂은 산적에는 게맛살 토막도 들어 있다. 어느덧 까르르 밝게 웃는 오전이 가고 맑은 저녁이 와서 그믐의 청암색 어둠이 치렁치렁 감기는 전신주 꼭대기 까치의 집에 별등이 켜진다. 늦게 도착한 아들딸 손자 며느리에 귀틀집이 들썩인다. 내달 철거 예정이 다가오지만, 동서남북 전신주가 많다. '위하여~' 들어 올리는 막걸리 잔 위에 별빛이 쏟아진다.   

 

 

부모는 자식의 기억으로 남는다-인터스텔라interste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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