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소묘

TIME MACHINE

담우淡友DAMWOO 2023. 2. 1. 08:02

스마트 폰에 탑승한다. 1981년 2월7일로 간다. 부산 송정 바닷가 어촌계장집의 사글세 방에 도착. 지척의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매일 찾아오는 햇살은 플라워 스커트를 입었다. 구멍 숭숭한 창호문 밖에 가끔 바람이 지나간다. 연탄 아궁이의 이산화탄소 향기가 선득하다. 가끔 와서 샴푸 향내 풍기는 여자의 잔흔처럼 설핏하다. 셋방살이 무직자 스물여덟 청년은 가난했다. 그림을 그렸지만 변변한 스케치북조차 없었다. 헌 접시 팔레트엔 물감이 말라 있었다. 글을 썼지만, 원고지가 떨어지면 보름이 훌쩍 지나갔다. 마당 건너 해변에 발길 닿으면 달이 어두운 수평선 위에 두렷이 웃고 있었고 청년을 별로 웃지 않았다. 별이 희미한 천청색 (淺靑色) 허공에 그리움이 늘 아득했다. 가끔 와서 청년과의 '닿음'과 '이음'을 뜨개질하는 여자가 그 길이를 조금씩 엮었다. 목도리가 되어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미리 둘렀다. 아침이 와서 해가 또 치맛자락 드리우면, 흔들리는 스마트 폰 화면처럼 가슴이 바람을 탔다. 차가운 바람이 창호문 앞에 왔다가 이산화탄소 입에 물고 뒷마당 담장을 넘어가듯 허전한 정오가 눈부시게 흔들렸다. 그러면 청년은 배가 고팠다. 방 한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석유 곤로에 라면을 끓여 빈 곳을 채웠다. 채우면 오후가 거짓말처럼 모래톱으로 달려갔고, 흰 거품 문 파도에 프렌치 입맞춤을 했다. 뜨개질하는 여자는 파도와 같았다. 가끔 와서 하얗게 부서졌고, 여자는수평선 너머로 가면 아주 먼 생각을 남겨 놓았다. 그러면 그리움이 실타래로 감겨 구르다가 가끔 온 시간에 '이음'과 '닿음'을 뜨개질했다. @#$%^&*(@#$

스마트 폰에서 하차할 시간. 2023년 2월1일 현재로 돌아온다. 아침을 먹고 출근할 참이다. 책상 위에 안착한 스마트폰의 위용이 양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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