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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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文)

부엉이 재떨이

담우淡友DAMWOO 2024. 9. 23. 08:20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른다. 부엉이 모습을 한 양은(洋銀) 재떨이. 어렸을 때 곰방대를 사용하던 할아버지가 썼다는 기억이 어슴프레하다.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된 재떨인지 그 때 물어보지 않아서  '출처 모름'이다. 인터넷을 뒤져 같은 모양의 재떨이를 찾아 보았지만 조각품이나 그림뿐이다. 유일한 것일까? 제작년도 제작자 이니셜도 찍히지 않은 주물(鑄物) 작품인데 오래 찌든 니코틴을 쇠솔로 문질러 닦으면 윤기가 난다. 하지만 소박하고 투박하면서 부엉이 이미지가 선명한 작품이다. 

 밤이면 뒤란과 잇닿은 뒷산 밤나무 숲에서 어린 간담을 서늘하게 울리는 부엉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들쥐나, 새, 심지어 산토끼도 잡아 먹는 맹금류의 발톱이 아니더라도 울음소리 하나 만으로도 위풍당당한 부엉이가 재떨이 모습으로 치환되었다. 담배와의 관련을 찾을 수 없는 매치다. 곰방대로 두드리면 맑고 상쾌한 소리가 나는데 할아버지는 그 소리를 즐겼던 것 같다. 흡연 끝에 재를 떨기 위해 부엉이 재떨이의 배꼽을 두드리며 어쩌면 노년의 시름을 탱~ 탱~ 날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그 소리를 들으며 끽연의 만족을 마무리했겠지만, 흡연을 안 하는 나로서는 재떨이 자체가 그윽하고 아름답기까지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집안 유래를 잘 아는 동생한테 재떨이의 출현 경로를 물었지만,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왔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어 놓는다. 그러고 보니 6.25전란 끝무렵 미군부대에서 잠깐 복무했던 아버지의 전력이 유력한 유입경로로 도출된다. 하지만 미군이 곰방대를 사용했을리 만무하다. 기념으로 한국인 병사에게 만들어 선물한 것일까. 당시 전란의 와중에서 미군이 주물 제작을 했을까? 한국에서도 주물 제작가능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미군 보다는 국내 주물공장에서 만들어져 흘러나왔을 공산이 크다. 

 어쨌든 출처가 궁금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집 유일의 부엉이 재떨이다. 할아버지가 즐겨 썼고, 젊은 시절 골초였던 아버지가 사용했다. 아버지의 금연 성공 이후 굴러다니던 재떨이를 고향집 선반에서 발견했을 때 냉큼 가지고 왔다. 아버지의 62.5 참전용사가 적힌 문패와 부엉이 재떨이가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채 나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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