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거 시스템을 통해서 투표로 뽑은 국가 수반(首班 the head)은 정치 행위의 제일-첫 번째 대상이 두말할 것 없이 국민일 것이다. 자기가 조각한 정부나 정치적 인연을 가진 정당의 운영과 지속력(持續力)을 도모하는 건 그 다음으로 치더라도 지도력에 흠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개인적인 안위와 속셈을 위해 국민 정서와 다른 획책을 자행한다면 국가 수반으로서의 덕행(德行)에 반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추대한 민심의 실망과 반목 앞에 외로히 서기 십상이다. 적어도 선택을 받았다면 그러한 길목에서 서성이지 않을 만큼 영민한 인물일텐데, 유아독존(唯我獨尊)의 한길에 들어서면 길섶의 나무와 꽃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민초(民草)라 하지 않던가. 그러면 그는 벌 아니면 나비다. 벌새라고 해도 좋다. 언제든 날아와 앉아서 풀꽃에서 꿀을, 나무에서 수액을 모으며 튼튼한 비행을 할 수 있다. 꿀과 수액을 가져 간다고 풀꽃이 시들지 않는다. 나무가 고사하지 않는다.민심은 열매를 맺고 영글어 간 후 가을걷이를 할 수 있다.
그의 정치 행위가 민심의 꽃밭을 밟고 가면 줄기가 꺾이고 잎사귀가 시든다. 봄이 오면 간신히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기에는 예기치 않은 비바람의 고통을 격는다. 모든 위정자들이 '국민' 국민 하지만, 국민을 자신의 제1 대상으로 여기는 척 할 때가 다반사다. 자신을 뽑아준 민심에 잠깐 감격할 뿐 권력에 취하고 나면, '뭐, 어쨌다는 거야!" 호통을 치고 눈살을찌푸린다. 급기야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가지 몰고 가곤한다. 개인적인 아집에 묶여 영민한 판단을 풀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선정(善政)은 '권력을 돌 같이 본다' 는 안목에서 나온다. 자기한테서 나오는 권력이 아니라 민심에서 나오는 권력을 써야지 올바른 정치를 영위할 수 있다. 국가의 권력은 외교(外交)에 쓰이는 것이지 국민에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외교에는 억지와 술수가 때로 요긴하게 쓰이지만, 국민에게 쓰이면 폭정(暴政)이 되기 쉽다.
우리는 국가의 수반이 우리를 위해 공복(公僕)으로서의 봉사(奉事serve)와 애민(愛民 loyalty and love of the people)할 것을 기대하며 뽑는다(선택한다) 그런 그가 사욕사리와 부정한 정치 행위로 이반할 때 침묵하지 않는다. 오불관언(吾不關焉) 할 수가 없다. 지원하고 문책하며 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그를 뽑은 투표권자의 권리이며 의무이기도 하다.
공복(公僕 public servant)은 우리(국민)의 세금으로 세비를 받아 정치 생활하며 봉사하는 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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