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의식의 重疊 overlap each other

담우淡友DAMWOO 2025. 2. 23. 08:49

 꽃샘에서 나온 생각이 뇌리의 길섶을 따라 머릿속으로 들어올 때 그 동선 아래 병행하는 봄이 깔려 있다.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치면 볼의 피부 밑에 한기와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온기와 같은 형국이다. 이 겹침의 두 의식의 사이 안에는 삭제할 수 없는 동수상응(動須相應)이 있다. 꽃샘 한기의 높낮이(강약)에 따라 봄을 서둘러 느낄 것인지, 봄 생각을 아예 안 할 것인지 가늠하기 때문이다. 종종 까맣게 잊고 있다가 불쑥 봄을 상기하곤 한다.  

 이른 봄에 활짝 피는 흰 목련을 바라볼 때, 순백하고 탐스럽다는 생각 밑에는, '비바람 불면 금방 떨어질 거야' 라는 예상이 깔려 있다. 흰 꽃잎이 질 때면 보기에도 처참할 정도로 추(醜)하다는 기억이 조만간에 보기 좋았던 생각 위로 떡하니 솟아오르는 것이다. 

 좋은 생각 아래엔 안 좋은 생각이 깔려 있고, 따스한 봄 생각 밑에는 차가운 꽃샘이 잠재 되어 있다. 잎샘추위가 산에서 내려오면 들에 핀 연녹색 나뭇잎이 갑사 치맛자락처럼 눈 앞에 드리워져 있다. 생각의 겹침(重疊)에는 이원론(二元論)의 어둠이 들어 있다. 선(善)에 대응하는 악(惡)과 미(美)의 대척점에 있는 추(醜) 외에도 하늘(天)과 땅(地), 여자와 남자, 밤과 낮, 심지어 중앙과 지방에 이어 국가(國家)와 국민(國民)이 있다. 이 대응 개념 사이는 나란히 동행하다가도 어느 새 한 쪽이 잠식 되거나 무시되어 의식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의식의 수평선에서 사라진다. 그러다가 언떤 자극이나 계기에 의해  위치가 수직 반등한다.

 사람의 양심(良心=善心) 아래에는 눈에 안 띄게 병행하는 비양심(非良心 =惡心)이 있다. 비양심 저변에는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나란히 달리는 양심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는 거짓말을 모른 척 하거나 아예 무시해 버린다. 거짓말을 참말처럼 공공연히 내뱉을 수 있는 소지가 여기에 있다.  두 언투가 나란히 수행될 때, 개인의 성향이나 품성에 따라 참언(正言)이 강하게  수행 되거나 허언(虛言)이 자행 되곤 한다. 

 무릇 정치분야에서 두 언투가 참과 거짓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상이 다반사다.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위정자와 국민의 목적의식은 다르기 때문에 위정자의 정언수행(正言修行)은 더 어렵고 복잡하다. 위정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천금(千金) 같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거짓말을 참말처럼 구구절절하는 위정자의 정치 생명이 오래 파릇파릇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식의 중첩은 결함이 아니라 천혜의 능력이다. 진실(眞實 true)과 허실(虛失falsehood) 사이에서 어느 쪽에 양심의 힘을 더 줄 것인지 사람의 도량과 품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의식의 중첩 능력은 양자 컴퓨터의 중첩 능력보다 훨씬 자연적이다)

 

 

덮힌 눈 아래엔 일상의 모습이 있다

    

'글(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은 비가 부르나  (0) 2025.03.02
십리무중 十里霧中  (0) 2025.02.25
나의 출신 성분은 감자  (0) 2025.02.21
나의 확증 편향 確證偏向  (0) 2025.02.20
달빛 새벽  (0) 202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