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春 spring)은 눈 이불 개고 일어났다. 한참 됐다. 출근할 곳을 잊지 않고 찾아가 자기 일을 하고 있다. 월차 커녕 반차도 한 번 쓰지 않았다. 휴가는 아예 없었을 것이다. 햇살 퍼지는 아침을 작성하고, 커피 향 번지는 카폐의 정오와 쌀쌀하지만 다정한 저녁의 대화를 일정표에 담았다. 개구리를 불러내어 춘삼월 일정을 일러 주고, 일찌감치 일어난 반달곰은 산기슭 아래로 보냈다. 곧 다람쥐까지 깨울 참인데 겨울잠도 제대로 못잔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생각과 문자를 가지고 사계절 문화를 만들고 즐기며 사는 그들이다. 도대체 아직 웃섶을 열지 않은 봄의 가슴 언저리에서 수유(授乳)는 관심 없다. 엄마에게 하던 짓처럼 만지가거릴 정감마저 아예 없다. 봄이 주단을 깔지도 않은 거리로 몰려나와 지난 겨울 쌓였던 눈의 결정체를 재 고안하고 있다. 유사이래 육각으로 아름답게 조각한 눈송이를 잊어버렸다. 팔각으로 늘이거나 사각으로 줄이려고 의견이 분분하다. 봄은 고민하고 있다. 꽃샘취위를 삽입할 것인지, 뒤 이어 잎샘추위의 강도를 높힐 것인지 불면증으로 눈이 벌건 사람들이 안쓰러워 비를 뿌린다. 비에 씻겨 나갈 눈곱의 양을 어림잡아 적용 범위를 가늠한다. 저기압전선을 확대하여 나무와 풀을 적시면, 저 메마른 사람들의 겨드랑이에 날개의 싹이 돋을까. 한 번도 날아 본 적이 없는 집닭처럼 푸드덕거리는 모습이 자꾸 안쓰럽다. 조용히 선하게 깨어나는 초목과 곤충은 계절에 역행하는 고성과 고함이 없다. 봄은 그들을 쓰다듬어 봄의 생활계획표에 차근차근 올린다. 목소리만 게걸스러운 사람들에게 봄은 오늘도 구름과 햇살과 부드러운 습기를 만련해 놓는다. 그의 위수지역엔 다툼과 반대와 고함소리가 없다. 내재된 순리(順理)와 섭리(攝理)에 따라 어김없이 자기 일을 한다. 그 봄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느 쪽으로나 관대하다. 온화하고 다감한 봄이다.
'글(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머무는 곳 (0) | 2025.03.11 |
---|---|
그래도 마지막은 사람이다 (0) | 2025.03.09 |
진눈깨비 雨雪 sleet (0) | 2025.03.03 |
봄은 비가 부르나 (0) | 2025.03.02 |
십리무중 十里霧中 (0) | 2025.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