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실화失火의 기억

담우淡友DAMWOO 2025. 3. 29. 08:44

 일곱 살 쯤 이맘때였을 것이다. 개울 고수부지에 건조한 봄바람이  이아치게 불고 있었다. 그네는 고사하고 미끄럼틀 하나 없는 산골에서 갈색으로 빛 바랜 억새 숲이 나부끼고, 버들개지 피는 냇가는 뒷산과 더불어 또 하나의 자연 놀이터였다. 5형제 중에서 바로 아래 동생 둘과 찬바람을 콧등으로 넘기며 냇가로 나와 슬쩍 가지고 온 성냥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의 라이터를 함부로 손댈 수 없었던 시절이라 머리가 빨간 성냥은 부엌 부뚜막 어디서나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궁이에 마른솔잎을 넣고 성냥을 탁 그어 불을 붙일 때면, 노랗고 붉게 금세 타오르는 불꽃이 언제나 꼬물꼬물 금빛 벌레였다. 성냥곽에 붙어 있는 적갈색의 마찰면에 머리 빨간 성냥개비를 부딪쳐 마찰할 때의 야릇한 촉감은 성냥을 놀이기구로 선택하는 데에 결정적인 동기를 주었다. 

 고수부지의 금잔디 구역에 둘러앉아 성냥불을 붙였을 때 마치 깍뚜기 공책의 종잇장처럼 타 들어가는 잔디의 까만 테두리가 3학년 누나가 쓰던 병뚜껑 크기의 고체물감이 도화지에 번질 때의 검정 물감 같았다. 일렁이는 불꽃은 어린 마음 속에 솟아오르는 모험과 상상의 나래 그 이상의 감각을 구현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불꽃이 바람을 타고 억새 숲으로 번지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으아악! 깨달았다. 발로 부비고 옷을 벗어 끄려고 했지만, 겉잡을 수 없는 두려움과 불가항력의 공포가 타오르는 불길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불길은 희거나 잿빛 연기를 내뿜으며 바람을 타고 냇가를 따라 하류쪽으로 억새 숲을 연소제 삼아 타 내려갔다. 부리나케 도망쳐 집으로 돌아와 사건 현장으로부터 숨으려는 의도와 함께 덜덜덜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무작정 두려워했다. 드믄드믄 있는 인가와 유선전화 한 통 없는 마을이었다. 119에 신고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쥐불놓이가 연례 영농행사처럼 빈번했고, 텃밭 작물 삭정이를 태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개울가 고수부지 억새 숲 타는 일이 논두렁 태우는 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하류 쪽에서 합류하는 다른 계곡의 개울이 차단효과를 주어 다리가 있는 곳에서 불길은 잦아들었다.

 천행(天幸)이었다. 불티가 개울의 자갈밭을 넘어 산에까지 도달해 주지 않았다. 더구나 동네사람 누구 하나 불에 탄 개울 고수부지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았다. 인접한 논에 대한 쥐불놓이 효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명절 때나 기제사(忌祭祀) 있는 날의 밤이면, 싸릿가지로 만든 활에 노끈 시위를 걸고, 싸릿가지 활에 헝겊을 감아 아버지 어머니 몰래 등잔용 석유를 적신 다음 텃밭이나 빈 논을 나가 성냥으로 불을 당겼다. 그리고는 공중으로 쏘아 날아가는 불꽃을 환상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불화살 놀이를 동생이나 사촌들이 보면 환호성을 지를때  어린 나의 영웅심은 불꽃 이상의 속도로 허공을 날았다. 훗날 정지용(鄭池龍 1902-1950 시인) 詩 '향수'에서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시구(詩句)를 읽으며, 내 마음의 싯귀처럼 생각했다. 초가지붕이 옆에 있고, 마른 풀숲이 지천인 곳에서 자행한 불화살 놀이에 잔불 사건 한 번 생기지 않았던 그 시절의 유년은 지금의 국토 여기저기 참사와 고통을 빚는 발화와 실화 사건을 보며 논술할 수 없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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