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2023/09 5

밤(栗) a chestnut

https://damwoo1.tistory.com/15709190 민재 그 애가 세상 밖으로 어쩌면 우주 안으로 아주 떠난 뒤 기억 밖으로 어쩌면 관심 너머로 아주 가 버린 후 잊었지만 장담할 수 없을 때 가끔 기억나지만 그 건 바람이었을 때 시간의 마디였을 때 가을 크고 잘 여문 밤알 속에 여기 있었던 원자로 스미어 여기를 기억하는 양자로 입자로 가득 영글어 왔다 그림을 그리다가 떠난 아들 대신 그림을 이어 그리던 엄마의 손에 알알이 주워 전달 되었다 몸으로 올 수 없어 문자로도 전송할 수 없어 단단하고 윤기나는 밤톨 타임머신 타고 왔다 생생한 파일 안고 그 파일 여는 사람이 지구에 아직 사는 한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왔다 민재 여전히 까까머리 청년으로. https://damwoo1.tistory.c..

글(文) 2023.09.22

추석이 오면

나는 송편 빚던 손가락을 펴고 마주앉아 있던 얼굴 콧등에 반죽 한 점 얹겠네 그러면 미소가 매끄러워 떨어지는 반죽을 얼른 손바닥으로 받아 빚고 있던 송편에 비벼 넣겠네 솔잎 깐 시루에 쪄 내면 콧등 땀이 밴 맛이 나서 한 입 두 입 나눠 먹겠네 아직 더 남은 반죽에 마주앉아 있던 미소를 밤톨과 함께 소를 넣어 쪄내자마자 손바닥에 호호불며 식힌 다음 고소하게 부서지는 송편 속의 까르르 한 줌 배가 불룩해질 때까지 계속 깨물어 부스겠네 이튿날 담장너머 이웃 집에 내용 안 밝히고 그냥 나눠 주겠네 추석이 와서.

글(文) 2023.09.20

해의 길

해가 황도(黃道)를 지나고 있어요 황홀한 시간이 흐르는 곳 길가에는 행성들이 주렁주렁 열리죠 한 알 한 알에 내린 햇살은 빛으로 익어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의 과수원이죠 땅의 복숭아 황도(黃桃)는 물결치는 섬유질과 맑은 눈길 해가 짚어 가는 풍경에 우리 마음은 벌과 나비처럼 모여 과일의 공기를 마시며 서로를 칭찬하는 모습이 따뜻해 감동을 주죠 신선한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선물해 줘요 해가 빛나는 대지에서 탐스러워지는 우리의 행성 잠시 그들을 보며 풍만을 즐기면 둥글게 부푼 모양과 안에 숨겨진 달콤한 추억이 우리의 소중한 감정으로 숨을 쉬고 있어요 땡볕 아래서 힘들어질 때도 있지만 그들 사이로 향긋한 생기를 몸에 받으며 우리의 마음이 점점 평온해져 갈 때면 해의 길에서 무르익는..

글(文) 2023.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