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333

신록 한가운데서

솔바람이 숲을 읽고 있다 신록의 초록에 겨워 소리 내어 읽는다 새 소리를 배경으로 깔고 작은 들꽃까지 세밀하게 낭송한다 듣고 있는 사람은 듣고 있다가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우두커니 서 있다가 가지를 벋는다 혈관 따라 물관을 내고 금세 한 키로 자란다 내려앉아 풀잎이 되는 사람 있다 나비가 알아보는 꽃을 피운다 바람이 먼저 읽는다 솔바람의 낭송을 듣는 사람은 숲에서 한 그루의 나무다 풀밭에서 한 송이의 꽃이다.

글(文) 2021.04.27

그림은 장애를 넘어서

키 2미터를 육박하는 장신에 몸무게도 지도 강사인 내 체중의 50킬로그램을 훌쩍 넘는 헤비급 체형의 고1 Jee군은 가슴에서 머리까지 걸쳐져 있는 마음이 11살에 가깝다. "안녕하세요. 제가 깜빡했어요. 선생님 미안해요." 목소리도 앳되고 순진무구하다. 가끔 큰 소리로 인사를 하거나 금방 파악이 안되는 웃음을 크게 터트리곤하지만, "동생들이 놀랬지요?" 상황을 의식하면서, 간지럼을 태우면 죽어라 웃어 젖히는 성격이다. 하지만 Jee군은 이젤 앞에 앉아 스케치북 위에 연필을 겨누면, 특등 사수처럼 예리하게 과녁에 집중한다. 그리는 방식의 이론이나 순서 따위는 그의 탄창에 한 발도 들어 있지 않다. 과녁에 조금 빗나가지만, 한 발도 장외로 나가지 않고 네모의 화면 안에 다닥다닥 들여 맞춘다. 연필의 탄착점이..

글(文) 2021.04.20

돌아보지 마세요

돌아보지 마세요 당신은 갈 길이 달라요 누구와도 같지 않은 걸음으로 가요 뒤는 나중에 봐도 늦지 않아요 뒤에 없는 걸 앞에서 찾지마세요 앞에 있는 걸 뒤로 비추지 말고 앞으로 가면서 모든 걸 보세요 뒤에 남은 건 앞을 거쳐 왔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아요 뒤에 있는 걸 앞에서 찾지 말고 앞에 있는 걸 더 앞으로 가져가세요 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뒤에서도 안 보일 테니까요 돌아보지 마세요.

글(文) 2021.04.17

책 만들기의 고샅길

책을 출판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나의 편집 실수로 첫 판의 시집 책등에 제목과 저자 이름이 누락 되어 있었다. 부크크 출판사의 강령대로 원고교체비를 내고 원고와 표지 수정본을 재발송했다. 지난 주 9일 원고교체일이었다. 월요일에 교체된 수정본 3권을 오늘(4월15일) 받았다. 수정된 상태로 잘 인쇄 되어 나왔다. 그런데 책등 아래 쪽에 제본이 잘 안된 건지 아니면 배송 과정에서 어찌 된 건지 파손된 부분이 보였다. 약간 뭉개져 있었다. 첫 판에는 없던 흠결이었다. 새로 부여된 ISBN과 변함 없이 깔끔한 내지의 제본이 다 좋았는데 무척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한 번 더 원교교체를 해야 될 것 같다. 무릇 모든 일에는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뜯어 고치거나 수정하는 일이 불편한 마음을 가져..

글(文) 2021.04.15

길가의 씀바귀꽃

아스콘 도로 갓길 가로수 전세집에 그녀가 돌아왔다 작년 늦가을까지 살다가 겨울 나러 떠난 뒤 봄이 꽃 필 때였다 전세 기간 한 철마다 자동으로 넘어간 재계약에 벚나무 가로수는 화사한 꽃지붕을 새로 드리우고 일 프로의 전세도 올리지 않았다 연자색 꽃잎을 뿌리며 맞이하는 벚꽃 이벤트에 바람도 손을 보태고 햇살은 이 쪽 저 쪽 공평하게 빛을 뿌렸다 차들이 기름 냄새 풍기며 힐끔힐끔 흠쳐 봐도 그녀는 란제리 한 겹 안 걸친 허리를 숨기지 않았다 쓰디 쓴 세상은 한겨울 지나면 새 봄이었다 선크림 따위로 햇살 가리지 않고 미세먼지 종일 들러붙지만 클린싱 오일은 봄비로 대신하고 티슈조차 공기로 대체했다 얇은 메디치 칼라에 봉긋한 얼굴이 햇살과 함께 빛나는 그녀는 벚나무 가로수 주인과 영구 전세 임차인이었다.

글(文) 2021.04.15

바람은 알까- 시조

있지만 뵈지 않는 생각으로 종종 와서 실핏줄 길 끝까지 붉은 온기 돌다가 멎으면 물오름달의 냉이순으로 피는 이 생전에 들꽃으로 한 철이면 좋겠다고 밭두렁 이슬 앉아 고랑으로 젖으면서 흙 위로 휜 풀잎처럼 꿈 한 폭에 눕던 이 없지만 또 있었던 기억으로 바람이 된 가슴을 다 메워도 빈 들처럼 불어와 쥐불에 머리칼 타듯 풀냄새 솟는 이를

글(文) 2021.04.11

드디어 나온 시집

2011년 한 해 동안 쓴 시를 이제서 묶었다. 그려 두었던 그림을 시 한 편 마다 삽화로 넣고 오랜 벗의 서문(序文)도 싣고, 가족들의 격려와 축하글도 함께 실어 출판했다. ISBN 979-11-372-4058-2((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의 조담우 趙淡友 詩나무 제 1집 '삶의 길섶에서'다. www.bookk.co.kr/damwoo 모든 삶이 어찌 詩 아닐까. 한 사람의 인생이 詩로 태어나면 한 번 더 사는 두 번 째의 생이 된다. 삶의 길 한 가운데가 아닌 한 걸음 비껴선 길섶....풀이 자라고 가로수가 푸르르며, 낮은 들꽃이 피는 길가의 시편...나의 두번 째 삶이다. 초원에서 하루 샐녘에 퇴근하는 가로등은 목덜미가 구부정하다 출근하는 해가 이름 없는 밤을 ..

글(文) 2021.04.07

내 책을 출판한다는 것

내가 쓴 글로 출판하는 책을 처음 갖는다. 내가 나를 문자로 형상화한 책 한 권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자기와 앞으로 있어야 할 자아(自我)를 또 있음직했던 개연성의 자신을 돌아보며 읽어 보는 거울이다. 아득히 잊었던 나의 거지반을 기억하고 잊을 수 없었던 나의 전부를 발견하고 뉘우치거나 아자! 아자! 외치는 메아리의 골짜기다. 자가출판은 아날로그 세대에게 쉽지 않았다. 부크크에서 건네준 편집 프로그램으로 시집 원고를 작성하는 데에 며칠, 원고 등록을 하면 출판사에서 일반 한글서체에서 출판사 전용 한글로 대체해야하는데 잘 몰라서 끙끙, 표지에 그림을 넣을 때, 일반 이미지에서 dpi300과 이미지 크기 조절에 또 한동안 쩔쩔, 조절하여 보내면 출판사에서 pdf판으로 변환하는데 누락 된 문장 때문에 또 수정..

글(文) 2021.03.31

나무의 미소

밑동에서 가지 끝까지 어느 부분으로도 웃을 수 없었던 나무는 꽃을 피웠다 한두 번으로 끝날 웃음이 아니었다 내 눈웃음은 잠깐 앉았다 가는 나비와 같았지만 나무는 벌이 꿀샘에 닿은 후에도 멎질 않았다 꽃잎에 저장해서 땅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멈추질 않았다 꽃으로도 더 오래 웃을 수 없었던 나무는 잎사귀를 파릇파릇 피웠다 내가 기분을 따라 노래와 춤을 추듯이 나무는 바람을 따라 단조와 장조를 조바꿈하며 춤사위를 지어냈다 고스란히 낙엽에다 저장해서 길바닥에 떨어진 후에도 미소의 달세뇨를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 새로 지을 다장조 미소는 원본으로 가지와 둥치에 남겨 두었다.

글(文) 2021.03.29

봄밤에 오는 비

도르래 소리 낮게 창문을 열라고 한다 음감 지닌 같은 방 누구 하나 쇳소리에 깨지 않게 빗방울 소리에 깨면 귓전에 닿는 입술 하나 돋게 탁, 소리 나지 않게 끝까지 밀지 말라고 한다 나뭇가지에 새 순 돋을 때 시끄럽더냐고 묻는다 머리가 젖는다고 들어가 버린 가로등이 없고 신호등이 번갈아 눈을 뜨는 걸 보라 허리가 다 젖도록 서 있는 전봇대를 보라 도로에서 샛길 까지 젖은 곳이 더 젖는 골목조차 비대면 마스크를 귀에 걸지 않는다 베갯잇에 낙수 소리 넣어 두라고 한다 돋은 꿈 한 잎 촉촉하게 렘수면 건너가게 건너가 만난 새 입술과 만나 빗소리 한 소절 읊게 푹 젖어서 사랑이 뚝뚝 떨어지게 도르래 소리가 나도록 닫지 말라고 한다 잔소리꾼이다.

글(文) 2021.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