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추억 시간이 잡아먹어 버린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낼 때 맹금류 새들이 토해낸 펠릿(pellet)과 같이 소화 되지 못하고 엉켜 있는 실마리들이 단단하다 전두엽에서 혹은 후두엽 밑바닥에서 데구르르 공처럼 눈시울 밖으로, 목구멍 밖으로 굴러나온다 콧날이 칼로 베이듯이 시큰하다 맹금류 새들은 .. 컷 2020.01.16
2020 또 한 해 2020년 쥐가 왔다 열 두마리의 큰 쥐와 삼백육십오 마리의 작은 쥐들이 왔다 쥐들의 세상 월세방 빌라의 뒤란에서 하수구 초입에서 전세를 쌓는다 월세를 쌓는다 높이를 잘 기어오르는 발과 수직과 수평의 대결에서 균형을 잡는 꼬리와 노동의 가치를 맡는 코를 가진 쥐들이 왔다 작년 재.. 컷 2020.01.01
2020 경자년 컷 2020 이 공 이 공, 이 영 이 영, 투 제로 투 제로 쓰기 편하고 읽기 쉽고 보기 좋고 2020년은 부르지 않았는데 오고 있다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멋대로 오고 있다 '부르다 죽을 이름'처럼 간절하지 않았는 데도 바람처럼 오고 있다 밤마다 살금살금 쥐의 걸음으로 다가온다 낮의 새가 듣지도 못.. 컷 2019.12.29
Christmas card 'zmfltmaktm tlwmsdl ekrkdhsek.'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온다.' 내겐 눈이 오지 않은 날과 같다. 눈이 오지 않으면 나뭇가지가 더욱 앙상하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가짜처럼 보인다. zmfltmaktm tlwmsdl ekrkdhsek 알파벳으로 잘못 쓴 한글 같다. 그러면서도 카드 그림을 그린다. 혼자 그릴 수가 없어서 태블.. 컷 2019.12.10
가을 여자 그녀는 기타 속에 들어 있는 낙엽을 줍는다 낙엽 속에 들어 있는 악보를 읽는다 소리로 전달하기에는 기타 줄이 제격이다 기타 줄에 낙엽의 악보를 주입한다 기타는 수동이지만 발성은 자동이다 그녀는 기타가 자기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기타를 치니까 기타가 노래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악보를 전송하고 기타는 수신한다 가을은 둘 사이에서 아무도 모르게 왔다갔다 한다. 컷 2019.11.29
가을 남자 가을이 깊으면 겨울이 가깝다 눈이 내리면 낙엽이 된 나뭇잎은 땅에 가슴을 대고 등을 대고 묻히지만 봄 여름 가을 내 듣고 새기고 저장한 세상의 이야기 바스락바스락 찬 바람결에도 속삭인다 공원 귀퉁이 갓길 구석 낮은 소리 번질 때 한 마디 한 마디 귀 기울이는 남자 가을 남자. 컷 2019.11.28
캐릭터 그리기 캐릭터가 활보하는 시대 나 대신 걷고 뛰고 날고 미디어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캐릭터 당돌하고 시크한 캐릭터를 창조해 본다 내가 말을 머뭇거릴 때 지껄어 주렴 내가 걷기를 주저할 때 성큼성큼 가 주렴 내가 뛰기를 망설일 때 달려가 주렴 내가 날기를 두려워할 때 훨훨 날아주렴. 내.. 컷 2019.02.10
10월의 장미 하얀 철제 울타리에 지난 여름 한창 피었던 장미 지고 거뭇한 수과가 여물고 있다. 한 가지 끝에 아직 이승의 끈을 놓지 못한 시들은 장미 송이 하나...... 고개 숙이고 꽃잎 처져 있다.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는데.... 내년 유월에 다시 필 준비를 아직 못 마친 것일까. 화실 안에 사철 시들지 않는 장미 분홍 조화 장미 오히려 싱싱해서 낯설다 아직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따스해 저 장미는 질 맘이 없어 보인다. 인조 인간도 생겨나면 내내 이승을 떠나지 않을까? 꽃 지고 나뭇잎 가고 아는 사람도 가는 가을.... 가시 남은 장미 나뭇가지에 다시 꽃이 피듯이 피안(彼岸)에 간 사람은 우리 기억의 가지에 다시 솟아나겠지. 사람도 꽃이 아닌 적이 있을까. 컷 2018.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