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마스크 4

우리 집 나의 마스크들

사용 장소에 따라 나의 마스크는 걸리는 곳이 다르다. 미술학원 강의 때 썼던 마스크는 안방 옷장 손잡이에 건다. 1층 미술학원 강의 마치고 3층 집으로 올라오면 걸어 두었다가 이튿날 내려갈 때 다시 쓴다. 한 번 썼던 마스크를 버린다거나 세균 오염 어쩌구 그런 건 내 메모장에 없다. 매일 한 번 쓰고 버리고 새 것을 쓸 정도로 마스크를 컨베이어 벨트처럼 실어 올 수도 없고, 왕창 사서 쌓아 놓고 매일 쉬 갈아 쓸 소비적 지향성(깡다구)이 없다. 적어도 새 것 한 번 쓰면 서너 차례 익숙한 내 입냄새 나는 마스크를 이어서 쓴다. 그렇게 썼던 실내용 마스크는 다음 단계의 용도로 넘어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헬스클럽에 갈 때 쓰는데, 미술학원을 실내로 치고, 헬스클럽의 구역을 실외로 치기 때문이다. 운동..

글(文) 2020.12.08

2020 경자년 추석

2020 경자년 추석 코로나가 먼저 귀성길을 막았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뒤를 이었다 (내게 해당하는 그 액수면 아무 선물 상자나 곱절로 살 수있다) 도로가 수입원이 되는 지구에 살고 있다 잘못이 없는데 글러먹은 문명이 있다 지구에만 있는 코로나19 도로가 없는 경로를 따라 고향길 자동차 보다 빨리 달린다 추석이 뭔지도 모르면서 마스크를 요구하고 비대면을 촉발한다 자기는 내지도 않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수납하게 한다 도로와 코로나의 상관관계 추석에 제대로 이르게 했다 달이 둥글게 뜨고 단풍 위에 햇볕도 농후하게 들러붙는데 빛도 색도 없는 주제에 귀성객의 발목을 잡는다 추석이고 뭐고 꼼짝마! 암기를 겨눈다 그 촉수에 찔리면 엄마와 아부지가 불안하다 여친의 스마트폰에 커피가 엎질러진다 올 추석은 비접촉 송편을 먹..

포토샵 2020.09.29

져 간 목련을 추억하다

져 간 목련을 추억하다 여덟 장의 마스크는 모두 흰색이었다 찬바람한테는 주먹을 내 보이듯 도톰하게 접어 두었다가 녹색 가운 걸치기 전 얼굴 먼저 피는 꽃들이 쉬쉬 바다를 건너 오는 감염 소문에 조심 조심 귀를 열 때였다 가지마다 촘촘히 여덟 장을 깨끗이 펴 놓았다 주먹질을 비켜 온 바람이 흔들면 나부끼면서 가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새들의 기침과 미열 오르는 햇볕 골목을 빠져나오는 증상의 모든 입에 꽃가루 묻혀 씌웠다 빵집에 들른 두통이 건널목 앞에 섰을 때 한 장 던져 주고 잠깐 집을 나온 격리에게도 한 장 삼 층에서 내려다 보는 의심한테는 네댓 장의 배달을 작정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택배의 정수리에 한 장 던진 조준이 빗나갔지만 한 구간 떠맡은 꽃들의 힐링 미소 몇 날 며칠 마지막 한 장까지 다 던져 주고..

글(文) 2020.05.11

마스크19-詩

마스크19 늘 가까웠던 공기를 밀어내고 내 입에 밀착한 놈이었다 위아래 입술을 통째로 부비면서도 깊숙한 혀 키스를 엿보는 놈 구취를 견디면서 허파를 공전하고 나온 숨을 온몸으로 빨아들였다 자전하는 등 뒤의 야채 같은 공기를 조금씩 바꾸어 들여보냈다 촉촉한 내 혀가 닿을락말락할 때마다 상하로 가슴을 떨었지만 법랑질 울타리를 너머 들어올 생각을 꿈에도 꾸지 않았다 놈의 등 뒤에는 야채밭을 짓밟고 온 스토커가 있었다 코와 입으로 동시에 허파까지 파고드는 속정 결핍의 사이코패스 막아준다는 구실로 양 볼까지 싸잡고 버티는 놈 놈의 보디 가드 철학엔 명제만 있을 뿐 논리가 풀잎이다 꽃잎에 입술 댈 때 서슴없이 비켜 선다 롱 타임 키스를 입 안에 넣을 때면 멀찍이 돌아서서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모든 물기 빼앗기고 ..

글(文) 202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