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커피를 내리며 2

커피 내리는 시간

창밖으로 본다 내리는 비를 비가 밖에서 내리고 안에서 커피가 내린다 비는 건물 벽에 금을 그을 때 '보인다'의 실금이다 커피는 포트 바닥에 고일 때 '내리다'가 보인다 한국의 경북 북부에 내리며 아프리카 중부 오른 쪽 사막을 보인다 원주민의 피부가 초콜릿 감촉이다 *분나(커피)에 젖은 옷자락이 내 유년을 펄럭이는 누이의 치마 같다 성당 벽 스테인드글래스 눈빛을 한 미사에서 *베아트리체를 처벌한 *교황에게 그은 X표 성호 그는 커피한테 세례를 주고 날개돋친 면죄부가 하늘을 잔뜩 흐렸다 커피가 수녀의 옷을 적시며 비가 창밖에 내린다 죄 없는 누이의 묵주처럼 또륵또륵 금을 긋는다 금은 지우는 권력이다 창밖의 비가 나뭇잎에서 오늘의 구슬로 구르고 사막의 커피는 바다를 건너와 방울방울 고인다 도기 컵 안으로 세게..

글(文) 2022.09.05

커피 내리는 아침

온음표 원두 한 숟가락 분쇄기에 붓는다 커륵커륵 피륵피륵 원으로 긋는 오선 위로 퍼지는 사분음표 한 악절 끝에서 다카포 되돌아 또 한 악절 두 악절 완성한 새 악보를 거름종이에 옮기면 다갈색으로 번지는 산미 꽃향의 커피 한 곡 마주 앉은 뽀얀 눈빛 반 컵 붓고 마주친 끄덕 한 줌 뿌린 다음 둥그러니 젓는다 입술로 계명을 읽고 코끝으로 음향을 맡고 혀 끝으로 듣는 자연의 교향곡 목을 타고 내려가 가슴으로 퍼지면 머리 위로 점점 세게 허리 아래로 점점 여리게 피아니시모 밝아오는 창밖의 아침 마주 잡는 손가락으로 번지는 오늘의 화음 커륵커륵 피륵피륵 안단테 모데라토 주제곡에 아다지오 변주곡으로 한참 이어지는 한 모금 쪽 두 모금 쪽 코다, 상아색 하트가 음표의 잔영으로 남는다.

글(文) 2022.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