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담우미술학원

글에서 그림이 태어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에서 글이 나오면 문장이 된다

글은 그림을 품고 그림은 글을 안고

글(文)

詩-들을 읽다

담우淡友DAMWOO 2011. 4. 22. 14:24

이름  
  뚝지 (작성일 : 2011-02-06 10:18:09, 조회 : 356

  



들을 읽다             /'뚝지'라는 필명으로 쓰다


들이 꼼꼼히 적어 놓은 겉장 바랜 내용
삭풍이 골짜기 쪽으로 대충 훑고 지나간 페이지를
논두렁 귀퉁이를 넘은 트랙터가 빠짐없이 짚어간 자국
햇살은 종일 밑줄 긋는다
한 칸 들여 쓴 첫 음절에는
삶의 폭을 이랑으로 재는 지푸라기 문자
잔설 얼룩진 행간을 건너면
시간을 그림자로 빗금 치는 억새 숲

다시 시작하는 튼실한 애벌레의 읽기처럼
지우고 덧붙인 머리말 헝클어진 한 글자도
마른 풀 토씨 하나 보태면 여백 넉넉한 바닥을 지나
서릿발 겹 음절 스스로 자판이 된 글발 찍는다
부스러지는 기호들은 새로 읽는 흙의 파일              

구불구불 계절 살아가는 이치대로 적어 놓은 일기에
읽다가 돌아서면 빠뜨린 페이지를 들추는 새물내 기척
남은 한기가 고집하는 삶의 밑동들이    
메 뿌리 하얀 기억을 따라 얼기설기 논두렁을 탄다
발꿈치 걸린 행간에서 잠시 머뭇거리면
여기서 저리로 돌아가는 왜 그리고 어떻게
흔한 어휘의 내가 페이지 끝에 반복하여 적히고
해 기우는 골짜기로 잦아드는 꼬리말 시리지만
벼 그루터기마다 선명한
오는 봄을 강조하는 방점들 무수히 찍혀 있다.





박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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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잔잔한 시심에 콕,
박혀있다 갑니다,뚝지 시인님.
2011-02-06


한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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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도 어이 이리 읽을거리가 많은지...
이 까막눈에는 한번도 그렇게 읽혀 본 적이 없는
뚝지님의 필력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참 맛나게 감상하고 갑니다.
2011-02-06


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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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읽는군요...
아직 추운데 너무 꼼꼼하게 읽으면
지루한건 둘째치고
감기들어유~~~
잘 보고 갑니다.
2011-02-06


가을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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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은 덮혀있는 흰 눈과 얼음조각만을 읽고 있었는데
그 밑에 무궁한 보고를 들쳐보지도 않고 그저
게으름 피우다 전부 다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제 겨우 시인님 시선을 빌어 찾아보려 합니다만
아무래도 시력이 고장난 것 같아 마음만 무거워집니다.
천천히 다시 하나씩 찾아보아야 할 것 같은 그런
봄의 방점들을 일일이 열어보렵니다.
감사합니다.*^^*
2011-02-06


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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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이처럼 읽다등으로 또는 무슨 독서법으로 쓴 시들이
대세를 이루더라구요. 시도 유행이라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외려 훨 뛰어난 문장을 봅니다. 필력이 부럽습니다.
2011-02-06


다음넷(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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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지님 언제나 시를 쓰시는 모습이 곱네요
튼튼한 문장력에 기틀을 잡으시고 펜을 들때마다
이어지는 상상력 속에 저 역시 빠져들고 마네요
이렇게 긴 문장을 쓰시면서도 춥지는 않으신지
그저 격려의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동안 마음으로 빛으시는
시를 통하여 많은 것을 깨닫게 하네요 들판이 읽는 은유와
흙들이 건네주는 문자들의 살아 움직임 역시 문장력이 펄펄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문장속에 갇혀진 틀속 에서 흙이 남기고가는 시의 문체들 상상을 느끼는 또 하나의 문법 독특한 은어이면서도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시의 작품
잘 보고 갑니다

 

 

評====================================================================================================

시마을 창작시부문 심사평


양 현근 (시인)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을 한 편 한 편, 꼼꼼하게 읽으면서 시마을 창작시방이 창작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정리해고」는 사물과 비유의 적절함이 어디까지 닿아있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키를 30센티를 낮추면/30퍼센트 이상 순이익이 생긴다는 회사측/반발하는 나무들의 빽빽한 스크럼/ 의 부분은 나무의 속성을 이용해 정리해고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정리해고의 아픔이 함께 읽어집니다. 사물을 이용한 에두르기가 뛰어난 작품이며 서정이나 관념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사물에 비유를 잘 살린 수작이라 여겨집니다.

  「들을 읽다」는 계절의 행간이 신선하고 발랄한 문체로 읽어지는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입니다. 겨울의 이미지를 지우고 새로 제본되는 봄의 풍경을 적는 듯한 이 작품이 봄 풍경을 묘사하는데만 그치지 않은 이유는 /흔한 어휘의 내가 페이지 끝에 반복하여 적히고 해 기우는 골짜기로 잦아드는 꼬리말 시리지만/의 부분과 같이 서정의 중심에서 화자만의 성찰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부분에 있어 구체성과 사유의 폭을 조금 더 넓혔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201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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